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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준의 도시이야기] 고밀화 도시 만드는 데 실패했다… 그래서 조선이 망했다

바람아님 2019. 4. 25. 07:37

(조선일보 2019.04.25 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


한국 도시화 비율 91%, 이미 완료… 신도시 만들면 他도시에서 이주
공기업 혁신도시 매우 기형적… 다양성 없으면 기형 될 수밖에
대도시 해체는 국가 경쟁력 와해… 지난 5000년 도시는 고밀화 진화… 기존 도시 '똑똑하게' 고밀화해야


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


대한민국은 도시화 비율이 91%다. 도시화 비율이 80%대면 종착 단계다.

우리는 90년대 중반에 도시화가 완료되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신도시를 만들고 있다.

도시화가 끝났는데 신도시를 만들면 다른 도시에서 신도시로 이사를 가게 된다.

세종시를 만들었더니 인구의 25%는 대전시에서 왔다. 송도를 만들면 인천에서 이사를 간다.

진주 혁신도시로는 진주 구도심에서 이사를 간다. 인구가 빠지니 구(舊)도시가 슬럼화된다.

그곳의 도로와 상하수도, 전기 인프라는 무용지물이 된다. 천문학적인 경제적·문화적 손실이다.

계속된 토지 개발로 자연 파괴도 심하다. 그런데 왜 계속 신도시를 만들까?

이유는 우리가 수십년 전에는 신도시로 문제 해결에 성공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중학교 때 인수분해로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었던 기억과도 같다.

그런데 현재의 91% 도시화율과 재개발 난제는 미적분 문제다.

그런데도 인수분해로 풀려고 한다. 그러니 답이 안 나오는 것이다.


신기술이 새로운 변수를 만들었다. KTX는 시간 거리를 단축시켰다. 지방으로 기업을 옮겨도 이사보다는 출퇴근을 택한다.

대구에 KTX가 깔리고 나서 대구의 대형 병원들이 망했다. 대구 시민들이 KTX를 타고 서울의 큰 병원으로 가기 때문이다.

지방 균형 발전 계획의 큰 골자는 공기업을 옮기면 직장이 생겨나고 도시가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현대가 만든 울산이나 삼성이 만든 수원을 예로 든다. 하지만 대기업과 공기업은 다르다.

현대자동차가 있으면 관련된 수백 개의 부품 회사가 있다. 하지만 공기업은 협력 업체가 없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진주로 내려간다고 현대건설이나 대형 설계사무소가 따라 내려가지 않는다.

이들은 서류는 인터넷으로 주고받고 한 달에 한 번 정도 KTX로 가면 된다.

공기업이 만든 혁신도시는 기형적인 도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세종시의 경우 대부분의 직업은 행정직 공무원이다.

한 도시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의 직업이 공무원인 도시를 상상해보라. 다양성이 없는 도시는 기형 도시다.

내가 아는 어느 교수님은 학교 선생님들의 정신 상담을 위해서 세종시에 자주 가신다고 했다. 이유가 특이하다.

세종시 대부분의 학부모는 공무원이다.

공무원은 연봉은 적지만 주변에 을의 입장에 있는 협력 업체들과의 권력적 갑을 관계에서 많은 정신적 보상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세종시에 오니 그럴 수 있는 인간관계가 없어진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학교 선생님들을 을로 대하고

스트레스를 준다고 한다. 단일 직종으로 만들어진 도시는 예상치 못한 문제를 만든다.


[유현준의 도시이야기] 고밀화 도시 만드는 데 실패했다… 그래서 조선이 망했다
/일러스트=이철원


도시는 공기업 하나의 이전만으로 완성되기는 어려운 복잡한 생명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근본인 덧셈 뺄셈부터 생각해야 한다. 바로 본능이다. 지난 5000년 인류 역사를 보면 도시는 항상 고밀화로 진화해왔다.

한 시대를 장악했던 국가들은 대표적인 도시가 있다. 우루크·아테네·로마·파리·뉴욕이다.

그리고 그 도시들은 당대에 가장 고밀화된 도시들이다. 그 시대에 가장 고밀화된 도시를 만드는 자가 시대를 이끈다.

조선이 망한 이유도 고밀화 도시를 만드는 데 실패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조선 시대까지 우리나라는 온돌이라는 난방 문화 때문에 2층 집이 없었고, 따라서 고밀 도시를 만들 수 없었다.

도시가 없으니 상업이 발달하지 않았다.

상업이 없으니 자본 축적이 안 되고, 화폐 자본이 없으니 경제 순환이 안 되고 계층 간 이동 사다리가 없었다.

조선은 경제 자산이 토지만 있었던 경직되고 정체된 사회였다. 현재 우리 사회도 자산 대부분이 부동산이다.

상업이 발달해서 국가 자산에서 동산의 비율이 높아져야 자본이 흐른다. 그러려면 도시가 고밀화되어야 한다.

짝짓기 본능 때문에라도 앞으로도 인구는 도시로 모일 것이다.

다양한 만남을 유발하는 도시는 가장 오래된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이다.


대도시 해체는 국가 경쟁력을 와해시킨다.

우리는 기존 도시를 '스마트 고밀화'시켜야 한다.

과거의 단순한 고밀화가 아닌, 집마다 사적인 외부 공간이 있고, 걷고 싶은 거리로 도시 전체가 연결되고,

걸어서 10분 이내에 공원·도서관·벤치가 많은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공짜로 머무를 수 있는 공간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우연히 만날 수 있게 해야 새로운 생각이 만들어진다.

용도별 지역지구를 폐기해야 한다. 자율 주행차가 상용화되면 빈 도로와 주차장 같은 기회의 땅이 도심 내에 생겨난다.

이 기회에 인수분해적 사고에서 나온 각종 관성과 규제를 혁파하고 미·적분학적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고정관념을 깨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치면서 정작 자신들은 안 바뀌는 정치와 행정이 제일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