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氣칼럼니스트/김순덕칼럼

[김순덕의 도발] 도발적 글쓰기 100일..나는 왜 장영희처럼 쓰지 못할까

바람아님 2019. 5. 9. 08:48

동아일보 2019.05.08. 14:01


‘김순덕의 도발’을 시작한지 8일로 100일이다. 그래서 ‘나는 왜 글쓰기로 도발 하는가…’에 대해 쓸 작정이었다.

그런데 5월 9일이 장영희 서강대 교수가 세상을 떠난 지 10주기라는 기사를 보고 기가 팍 죽었다. 죽었다 깨도 선생님처럼 쓸 수 없는 나는 괜히 인터넷공간을 어지럽히고 독자들의 시간만 잡아먹는 게 아닌지 죄송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고 장영희 서강대 교수 동아일보DB

●너무나 착하고 좋았던 장영희 칼럼

선생님은 모르겠지만 나는 선생님과 각별한 인연이 있다(이것도 ‘장영희 글’ 매력 중 하나다. 글을 읽는 사람들 하나하나가 장영희와 가깝다고 느끼게 하는 것). 선생님은 2006년 7월부터 2년간 우리 신문에 칼럼을 썼는데 수차례 내 칼럼이 선생님과 같은 날짜에, 그러니까 신문을 펼치면 나란히 볼 수 있게 실린 거다.

돈과 사랑’(장영희)-(나),(장영희)-(나). 제목만 봐도 알겠듯이 선생님 칼럼은 선생님처럼 착하다. 덕분에 안 그래도 착하지 못한 나의 칼럼이 더 못된 글로 보이는 것이었다.

2006년 9월 8일자 동아일보 오피니언면

라는 제목으로 선생님은 “결국 이 세상을 지탱하는 힘은 인간의 지식도, 열정도, 용기도 아니고 ‘착함’이라고 나는 생각한다”라고 썼다. 그 옆에서 내가이라는 제목으로 “나라와 국민을 개조하겠다는 야심 찬 정부가 모든 걸 해결하겠다고 큰소리친다면 과대망상이거나 시대착오라고 봐야 한다”고 거칠게 내질렀으니 얼마나 비교되겠나.


●그 옆에서 나는 독한 칼럼만 썼다

압권은 2008년 3월 14일 칼럼이다. (장영희)-(나). 선생님은 아무리 세상이 험하다 해도 착하게 사는 사람을 찾아내서 희망을 전한 반면, 나는 또박또박 악랄하게 싸우자는 사람을 그냥 봐 넘기지 못하고 ‘반사’의 기염을 토했다.

2008년 3월 14일자 동아일보 오피니언면

언젠가 전화로 하소연한 기억도 있다. “선생님과 같이 나간 날은 저 혼자 나쁜 여자가 돼버려요….” 그래서 한번 만나 위로받기로 했는데 그걸 못하고 말았다(마음먹은 건 미루지 말고 해버려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선생님 글은 모두 감동적이지만 그 중에서도 나는 ‘눈먼 소년이 어떻게 돕는가?’를 읽고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영어회화 시간이었다. 수녀, 공산주의 의사, 눈먼 소년, 일본인 교사, 갱생한 창녀, 여가수, 정치가, 여류 핵물리학자, 청각장애 농부, 그리고 백수인 나 열 사람 중 딱 여섯 명만 살려서 새 나라를 세워야 한다면 누구를 택할 텐가. 대충 의견이 일치하는데 눈먼 소년에 대해서만 엇갈렸다. 살려준들 다른 사람들에게 짐만 될 뿐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이때 평소 말을 잘 안하던 학생이 천천히 손을 들었다.

“새로운 나라에선 모두가 자기 일을 하느라 아주 바쁠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그 사회에도 경쟁이 생기고, 질투와 미움에 사로잡혀 권력을 놓고 싸울 겁니다. 그렇지만 이 눈먼 소년처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으면 자기 시간을 쪼개 그를 도와야 할 겁니다. 그러면 남을 위해 나의 작은 것을 희생할 수 있는 배려하는 마음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론부분에선 눈물이 핑 돌 정도다. “그렇게 남을 돕고 함께 나눌 줄 모르는 나라라면, 그런 데서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도 모릅니다.”


●아, 착하게 살아야지…장영희처럼

선생님의 글은 이처럼 가장 중요하지만 우리가 잊고 있었던 귀한 것을 일깨워주기에 감동적이다. 굳이 (질투심에) 선생님 글의 패턴을 분석한다면, 먼저 셀프디스를 한다. ‘글 속의 장영희는 섬세하고 부드럽고 따뜻한 데 반해 실제로 만나는 장영희는 아주 무뚝뚝하고 직설적이고 비판적’이라는 식으로(제목 ‘장영희가 둘?’). 선생님의 자학개그는 성냥불처럼 공감을 일으킨다. 우하하 장영희도 나 같은 보통사람과 다르지 않구나 싶어 와락 가깝게 느껴지게 한다.


그리고 스토리가 있다. 동화도 좋고, 어린 조카도 좋고, 어린 시절이나 제자들 이야기도 곧잘 등장한다. 재미있는 건 물론이고 하나같이 절로 미소를 짓게 만드는 내러티브다. 악한이 등장하는 듯해도 종국에는 거기서 ‘누군가 나로 인해 고통 하나를 가라앉힐 수 있다면’ 같은, 아무도 부인 못할 교훈을 이끌어내면서 막을 내린다. 아 착하게 살아야지 싶어지도록.


글이 바로 사람이라면, 선생님은 ‘좋은 사람’이기에 그런 글을 쓸 수 있었다. “삶을 다하고 죽었을 때 신문에 기사가 나고 모든 사람이 단지 하나의 뉴스로 알게 되는 ‘유명한’ 사람보다 누군가 그 죽음을 진정 슬퍼해 주는 ‘좋은’ 사람이 된다면 지상에서의 삶이 헛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썼듯이 선생님은 정말 좋은 분이었다(그러고도 그 글 끝에는 “내 마음 속 어딘가도 분명히 ‘좋은 선생’보다는 ‘유명한 선생’이 되어보고 싶은 생각이 있음에 틀림없다”는 반전의 마력까지 구사했다)


선생님을 말할 때면 늘 나오는 소리…‘기동성 부족’과 감동의 연관성 같은 건 난 절대 언급 안할 작정이다. 선생님도 어느 글에서 지적했듯, ‘장애를 극복하고’ 같은 말은 ‘못 생긴 얼굴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처럼 결코 해선 안 되는 표현이라고 본다(둘 다 불편하지만 굳이 극복해야 한다는 의지 없이도, 우리는 당연히 함께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바쁘신 독자는 맨 끝으로 가주세요

‘그럼 왜 나는 장영희처럼 잘 쓰지 못할까’를 이어서 쓰려고 했는데 글이 너무 길어져 버렸다. 장영희의 감동을 잃고 싶지 않은 분은 여기까지만 읽고 휘리릭 맨 끝으로 넘어가셨으면 한다.

나도 한때 선생님 같은 글을 쓰고 싶던 때가 있었다. 더러 기억하는 고마운 독자들이 있는데, 2001년 여름 1년간 뉴욕에서 ‘김순덕의 뉴욕일기’를 쓸 때다. 처음 보는 뉴욕, 처음 접하는 세계화의 현장에서 나와 내 딸의 이야기를 부지런히 전했었다.

‘김순덕의 뉴욕일기’를 모아서 펴낸 책인 ‘마녀가 섹시하다’
그때는 댓글이 없던 시절이어서인지, 솔직한 글쓰기도 두렵지 않았다. 개인적 글쓰기는 잘하면 독자와 래포(rapport)를 형성할 수 있다. 심지어 딸이 귀국한 뒤엔 혼자 밥은 제대로 먹고 사는지 걱정해주는 독자도 적지 않았다.


●나는 착하게 쓰고 싶지 않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착하게 쓰기 싫다”고 혼자 선언을 해버렸다. 한 여성 영화감독의 인터뷰에서 “provocative and controversial issue를 피해가지 않는다”는 대목에 꽂힌 다음인 듯하다.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는 것이 안타까운데 나는 내가 동아일보에서 월급 받는 신문기자임을 새삼 깨달았던 거다(김순덕의 ‘도발’이 provocation으로 번역된 것을 보고 난 쾌재를 불렀다).

‘김순덕의 도발’ 페이지

안다. 핑계라는 걸. 장영희 만큼 나는 아는 게 많지 않고, 내공이 모자라며, 결정적으론(!) 착하지도 않다. 십여 년 전 독자가 “당신 글을 읽으면 불편해진다” 메일을 보내왔는데 나는 “편해지시려면 성경이나 불경을 보시라”고 불경스럽게 답장을 쓴 적도 있다. 이낙연 총리가 신문사에서 함께 일하던 시절 “자네는 이름도 순하고 생긴 것도 덕스러운데 왜 글은 독하게 쓰느냐”고 했을 때, 나는 칭찬으로 받아들였다.


지금 내가 사는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 내 눈에 보이는 가장 논쟁적 이슈를 기자인 나는 피해갈 수 없다. 내가 알게 된 모순, 도저히 입 다물고 있을 수 없는 거짓과 잘못을 한 바닥 써놓고는 “그럼에도 이러저러한 밝은 면이 있다. 착하게 살면 나쁜 놈들이 스스로 개과천선할 것이다”라고 끝내면 희망은 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난 그러기 싫었다.


●여자니까 부드럽게 써야한다고?

나는 신문기자다. 애완견도, 동반견도 아닌 감시견이다. 여자라고 부드럽고 촉촉하게, 여자니까 여성주변 이슈만 써야한다는 통념은 우습다. 남자가 가장 뜨거운 이슈를 피하는 모습도 가소롭다.

나만의 insight를 증거처럼 내보이면서, 그게 없으면 남들이 모르는 또는 안 쓴 information이라도 가장 날카로운 단도에 매달아 들이대면서, 그러니 어쩔래, 이렇게 지켜보는 언론이 있는데 계속 그러다 망할래, 하고 견제하는 기자답게 쓰고 싶었다.

매번 그렇게 썼다는 건 아니다. 밥값을 하려면 써야 하는데 안 써질 때의 고통은 죽고 싶을 정도다. 다행히도 인터넷공간은 고통스럽지 않아 좋다. 신문에 2주에 한번 쓰는 김순덕칼럼은 뭘 써야 좋은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반면 동아닷컴에 쓰는 도발은 그런 고민이 적다. 그래서 깨달은 사실이 있다. 글은 자주 써야 곧잘 써진다는 것이다.


●기자는 감시견, ‘영원한 야당’

기자이자 작가였던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에서 순전한 이기심을 첫 손에 꼽았다. 관종(관심종자)이 미학적 열정이나,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으로 글을 쓴다면서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이라고 했다.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
나는 가슴이 쿵쿵 뛰는 글을 쓰고 싶지만 나 혼자 쿵쿵 뛰고 만다는 걸 안다(능력이 안 되면 쓰질 말아야 한다는 법이 없어 천만다행이다). “우파정권 비판하다 좌파정권도 비판한다”고 꾸짖는 독자가 있는데 기자는 ‘영원한 야당’인지라 쓸거리는 무궁무진하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다.

개인적 글쓰기도 할 생각이었는데 “너 기레기 맞다…” 같은 댓글에 주변사람까지 상처받을까봐 고민하고 있다. 악플이 무(無)플보다 낫다고 믿는 필자로서 독자와 교감하는 인터랙티브 공간을 추구하고 싶지만 가끔은 심란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목매달고 죽어드려야 하나 싶어서.


●장영희처럼 마무리하기

이렇게 잔뜩 벌려놓고는 마무리하기 힘들 때, ‘인용’을 활용하는 방법이 있다. 장영희 버전이라면 이렇게 쓸 것 같다. “누군가 말하더군요. ‘내 힘들다’를 거꾸로 하면 ‘다들 힘내’가 된다고”(‘그러나 내겐 당신이 있습니다 ; 다시, 희망에 말 걸게 하는 장영희의 문장들’에서) 선생님, 천국에서 잘 계시는 거죠?

죄송하지만 그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 차라리 불덩이 같은 문정희의 시로 끝내고 싶다. 나 죽으면 묘비에 쓰고 싶은 작품이다.


●나의 펜…문정희

나의 펜은 페니스가 아니다

나의 펜은 피다

하늘이여 새여

먹어라

아나! 여기 있다

나의 암흑

나의 몸

새 땅이다

너에게 주는 선물이다

두 번은 없다


dobal@donga.com

※이 글에서 인용된 칼럼의 제목을 누르시면 본 칼럼 전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김순덕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