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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포커스] '셰일 강국' 미국이 原電 놓지 않는 이유

바람아님 2019. 6. 14. 08:28

조선일보 2019.06.13. 03:14

 

미국 기업 유턴은 셰일 혁명 영향.. 原電 건설도 중단하지 않아
한국 경제 강국엔 원전 자립 역할, 에너지 약소국의 고통 피해야
김덕한 산업1부장

외국으로 나갔던 미국 기업이 미국으로 돌아가는 '리쇼어링'이 본격화한 건 '일자리 늘리기'에 몰두하는 도널드 트럼프 정부 때가 아닌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 때다. 2010년부터 오바마가 임기를 마치던 2016년 1월까지, 1600여 기업이 미국으로 복귀했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이 기간 미국에 제조업 일자리 약 80만개와 간접 고용 240만명이 생긴 것으로 분석한다. 2000~2003년 일자리 24만개가 미국에서 해외로 빠져나간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반전이다.

이런 반전은 오바마 행정부의 '리메이킹 아메리카' 같은 정책적 영향보다는 '셰일 혁명'이 상징하는 미국의 '에너지 파워 급상승' 때문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미국은 원유·가스로 대표되는 화석 에너지 전쟁에서 셰일이라는 신무기를 동원해 중동의 맹주 사우디아라비아를 꺾었다. 사우디 등 중동 국가는 원유 가격이 배럴당 20달러 아래로 내려가면 생산비가 훨씬 높은 미국의 셰일가스·원유 산업이 붕괴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사우디 재정만 부실해지고 미국의 셰일 산업은 좀비처럼 살아남았다.

미국 승리의 원동력은 혁신 기술과 자유주의의 유연성이었다. 끊임없는 기술 혁신으로 셰일가스 생산 비용은 낮아졌고, 원유 가격이 생산비보다 낮아져도 생산을 중단한 채 버틸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 지하자원 소유권을 정부가 아닌 땅 주인이 갖도록 하는 미국 법도 땅 주인과 개발 업자, 장비 임대 업자가 자유롭게 협업해 셰일 개발을 할 수 있는 토대가 됐다.

미국 환경 운동가들은 셰일 개발이 초래할 수 있는 물 고갈과 토양 오염 문제 등을 경고했지만 채굴 때 발생하는 독한 염수(鹽水) 등의 처리, 폐(廢)셰일전(田)의 마무리 등 필수적 조치만 제대로 한다면 사업 자체를 막지는 않았다. 이런 요소가 조합돼 미국은 에너지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세계 최대 산유국으로 도약했다.

이런데도 미국은 원전(原電) 건설을 멈추지 않는다. 기존 원전 수명도 30년에서 60년, 이제는 80년으로 늘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심지어 가장 '더러운' 에너지원으로 사실상 폐기 절차로 들어간 석탄마저 '가능하면 살려야 하는 에너지원'으로 규정하고 규제를 풀고 있다.

이런 에너지 지형도의 변화 때문에 세계 질서까지 바뀔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 정치학자 피터 자이한은 저서 '셰일 혁명과 미국 없는 세계(The absent superpower)'에서 에너지 수입이 필요 없게 된 미국은 국제사회에서 온갖 일을 다 처리해주는 수퍼 파워 역할을 포기할 것이고, 세계 각국은 각자도생(各自圖生)해야 하는 유례없는 무질서에 빠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리나라가 세계 5대 석유 수입국, 세계 7대 천연가스 수입국이라는 약점을 딛고 경제 강국으로 성장하는 데에는 원자력을 '국산 에너지'로 만들어 낸 기술 자립이 큰 몫을 했다. 오는 19일이면 문재인 정부가 탈(脫)원전이라는 '멋있는 선언'을 한 지 2년이 된다. 그 2년 동안 우리는 원전 23기를 설계 수명만 되면 다 세우기로 했고, 공정이 10% 진행된 원전 2기의 건설 작업을 갑자기 중단시켰고, 계획된 원전 4기는 백지화했다. 그러면서 국민이 감당해야 할 에너지 약소국의 고통에 대해서는 제대로 설명조차 하지 않았다.

지금껏 우리나라 역대 지도자들은 이념 차이와 관계없이 부국강병이라는 공통된 가치를 추구해 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와는 상당히 다른 노선을 걷고 있다. 그것이 에너지 파워와 함께 국가 파워까지 약해지는 '빈국약병(貧國弱兵)' 노선은 아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