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제 2019.06.16. 17:18
양국 국민들의 성금을 모금해 받침대(47m)는 미국이, 동상은 프랑스가 각각 맡기로 합의했으나 돈이 걷히지 않았다. 40만프랑을 모금하려던 프랑스는 보불전쟁 패전으로 50억프랑의 배상금을 물어 돈을 더 거둘 여력이 없었다. 독립전쟁 때 도왔던 프랑스가 프로이센과 전쟁할 때 외면한 미국에 아무것도 주지 말자는 반대도 많았다. 결정적으로 경제사학자 찰스 킨들버거가 ‘최초의 세계 공황’이라고 평가한 1873년 미국발 공황 여파로 자유의 여신상 건립 사업은 마냥 늘어졌다.
프랑스보다 훨씬 적은 분담금조차 걷히지 않던 미국에서는 언론인 조지프 퓰리처가 대대적인 모금 캠페인을 펼치고야 가까스로 돈을 모았다. 사업 지연 속에서도 동상 건립 기술은 몇 걸음 앞으로 나갔다. 애초에 석상으로 건립하려던 계획이 보다 첨단 기술을 동원한 동상 제작으로 바뀌었다. 구스타프 에펠이 정교하게 연결한 철제 골조 위에 천재 조각가 바르톨디가 설계한 대로 얇은 구리판을 덮은 자유의 여신상은 오늘날까지 견고하게 세월을 이겨 나간다. 에펠은 이때 경험을 기반으로 파리 세계박람회(1889)의 기념물 에펠탑을 세웠다.
자유의 여신상은 건립 이래 미국 이민자들에게 희망의 횃불을 비쳤다. 1885년 5,622만명이던 미국 인구는 자유의 여신상 도착 30년 후인 1915년 1억56만명으로 불었다. 유럽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이민들은 ‘자유의 여신상’과 대면하며 새로운 꿈을 키웠다. 미국뿐 아니다. 세계가 공유하는 자유의 상징물로 자리 잡았다. 요즘에도 자유의 여신상이 희망의 아이콘일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할아버지는 1885년 16세 때 독일에서 이주해 자유의 여신상과 미국 이민 동기뻘이다. 모계도 스코틀랜드 이민 출신인 그의 반이민 장벽은 날로 높아진다. 자유의 여신이 눈물 흘릴 판이다.
/권홍우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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