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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우의 세계 경제 읽기]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진 美·中.. 현재로선 미국이 유리한 고지 점령

바람아님 2019. 6. 25. 17:12

조선일보 2019.06.24. 03:11

 

기존 패권국과 신흥 강국의 충돌 경고, 트럼프 임기 첫해 나와
'골디락스 경제' 진입 미국, 성장률·환율 불안 中보다 유리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前 금융위원장

"어두운 급커브 길에서 백미러 보고 운전하다가는 큰 사고 친다." 얼마 전 서울에 다녀간 로버트 머튼 MIT 석좌교수가 들려준 얘기다. 20여년 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금융공학의 선구자 머튼 교수의 말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과거 프레임에 얽매이지 않는 혁신적 접근을 강조한 것이었지만 글로벌 정치경제 환경의 급변으로 불확실성이 커진 오늘날, 미래지향적 국가 전략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경구(警句)이기도 했다. 세계 경제의 최대 리스크로 떠오른 미·중 무역 갈등과 패권 전쟁은 우리나라와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다.

오는 28~29일 오사카 주요 20국(G20) 정상회의 기간 미·중 정상회담이 예정되면서 무역 갈등 해소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다만 전격적 타결은 쉽지 않은 분위기인데, 분쟁의 본질이 무역수지 차원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국제 질서 주도권 쟁탈전이자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 경쟁이 배경에 있고, 중국의 불법 보조금 지급과 지식재산권 등 불공정 무역 관행 개선을 위한 법 개정 문제로 팽팽히 맞서고 있다. 자유 시장 경제와 정부 통제 체제의 정치 시스템 간 충돌, 그리고 세계 패권을 둘러싼 자존심 싸움인 만큼 장기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지난해 미국의 대중 무역 적자가 4200억달러로 무역 불균형이 지속 확대되면서 G2(미·중) 갈등은 예견되어 왔다. 미국과 중국이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질 것이라는 그레이엄 앨리슨의 경고가 나온 건 2017년. 우연히도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된 해였다. 중국은 2010년을 분기점으로 일본을 제치고 국내총생산(GDP) 규모 세계 2위로 올라섰다. 미국은 세계 총 GDP의 4분의 1을 점하고 있고, 17%를 차지하는 중국과 합치면 G2 비중은 40%를 넘어선다. 일본을 포함한 이 3국은 전 세계 GDP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경제·에너지·대외환경 등에서 미국 유리

무역 전쟁의 장기화는 모두에게 부담이지만 미국이 일단 협상에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첫째, 미국 경제는 성장·고용·물가가 동시에 호조를 보이는 소위 '골디락스'에 진입하는 상황이다. 반면 중국은 과도한 국가부채 등 구조적 취약성에다 본격적 경기 둔화로 올해 6% 성장률 달성과 달러당 7위안 환율 방어가 도전받고 있다. 미국은 연방준비은행(Fed)의 선제적 기준금리 인하가 예상되면서 무역 전쟁 충격 완화 기대감을 키워 지난주 S&P 주가지수는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둘째, 국제정치 역학 관계의 핵심 변수인 에너지 파워 면에서 미국은 셰일가스·오일 경쟁력을 바탕으로 우위를 선점했고 중국의 원유 수입은 계속 증가 추세에 있다. 향후 5년간 원유의 수급 추정치를 보면 세계 원유 일일 평균 생산 증가량(570만 배럴 예상)의 미국 기여도는 70%(400만 배럴)에 달하고 2021년 이후 순 수출국 전환이 예상된다. 반면 중국 원유 수입은 현재 일일 800만 배럴 수준에서 2024년 1100만 배럴로 계속 늘어나 에너지 대외 의존도가 증가할 전망이다. 최근 미국·이란의 충돌로 빚어진 국제 유가 급등도 중국에 더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셋째,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강경 노선은 미국 내 초당적 지지와 함께 주요 서방국들의 지원을 받는다. 이런 배경으로 미국은 대만을 국가로 지칭하고 홍콩 반정부 시위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면서 중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미국 대선 일정을 고려해도 미국은 무역 협상을 서두르기보다는 당분간 교착 상태를 유지할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미국 대선 득표율은 대선 2분기 전 경제지표와 가장 높은 상관관계를 보인다는 통계 분석도 나온다.

금융에선 '홍콩 엑소더스', 제조업은 '차이나 엑소더스'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최근 커버스토리는 홍콩 사태다. 홍콩·중국 간 갈등이 미·중 간 분쟁으로 전이될 가능성에 대한 국제 금융 시장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달 초 다녀온 홍콩의 금융계에 따르면 과도한 중국화 압박에 대한 거부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 고조로 홍콩의 국제 금융 허브 위상이 흔들리면서 싱가포르로 이전하는 글로벌 금융회사가 늘어나는 추세다.

무역마찰 여파로 구글·폭스콘·애플 등 글로벌 주요 기업은 물론 중국 기업의 '차이나 엑소더스' 기류도 확산일로에 있어 세계의 공장으로서 중국 위상은 떨어지고 있다. 작년 이후 해외 이전 또는 해외 생산설비를 확대한 중국 상장기업은 20개를 넘어섰다. 중국 기업의 베트남에 대한 지난 5월 신규 투자는 작년 동기 대비 5배 이상 늘어나 금년도에 중국은 베트남 최대 투자국으로 올라설 전망이다. 태국·필리핀 등 신흥국 투자도 급증세를 보이며 중국 국내 투자와 고용에는 부정적 영향이 불가피한 상황이고, 중소형 은행 중심으로 채무 불이행 위험도 커지면서 중국 금융 시스템 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

오사카 G20 회의는 10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한국이 중심에 섰던 서울 G20 회의를 떠올리게 한다. 일본은 이번 G20 회의를 계기로 미국·유럽연합과 수소에너지 기술 개발 공동 계획을 추진하는데 막상 수소차를 중점 육성하겠다는 한국은 빠져 있다. G20 변방으로 밀려난 느낌이다. '커브 길에서 백미러 보고 달리는 잘못'을 피하라는 머튼 교수 말처럼, 오는 G20 정상회의가 과거를 딛고 앞으로 나가도록 한·일 관계 획기적 개선과 한·미·일 공조 체제 강화 기회로 활용되어야 한다.

☞투키디데스 함정

기존 패권 국가와 빠르게 부상하는 신흥 강대국의 불가피한 충돌 상황을 의미한다.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펠로폰네소스전쟁에서 유래된 말로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장 그레이엄 앨리슨의 저서 '예정된 전쟁(Destined for War), 2017'에서 글로벌 주도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미국과 중국은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져 서로 원치 않는 전쟁으로 치닫는다고 분석했다.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前 금융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