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의 해가 저물고 쥐의 해가 밝았다. 경자년(庚子年)이니 그냥 평범한 쥐가 아니라 흰쥐의 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사람은 이름을, 쥐는 논문을 남긴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흰쥐는 생명과학 연구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실험 동물이다. 인류의 건강 증진과 생명 연장을 위해 우리나라에서만 한 해 350만 마리가 희생된다.
서울대 대학원생 시절 나는 발생학 실험을 위해 거의 1년 동안 매일 흰쥐 20마리를 죽였다. 흰쥐의 꼬리를 붙들고 앞발로 실험대 모서리에 매달리게 한 다음 목 뒤를 누른 채 순간적으로 꼬리를 잡아당겨 경추(頸椎)를 분리하고 배를 갈라 난소를 꺼내 배양액에 담아내는 일을 수천 번 반복했더니 이 전 과정을 4분 내에 마무리하는 그야말로 '생활의 달인'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실수로 한 마리를 놓쳤다. 이튿날 다시 잡긴 했지만 더 이상 실험에 쓸 수 없게 된 녀석을 나는 그냥 죽여 없애야 했는데 손이 너무 떨려 결국 죽이지 못했다.
프란스 드 발의 '공감의 시대'에는 흰쥐의 공감 능력에 관한 실험 결과들이 소개돼 있다. 흰쥐로 하여금 지렛대 장치를 눌러 먹이를 받아먹도록 훈련시켰는데, 지렛대를 누르면 옆 칸의 쥐가 전기 충격을 받는다는 걸 알아차리곤 누르기를 거부했다. 같은 상자에서 쥐를 차례로 한 마리씩 꺼내 통증 실험을 하는 과정에서는 끌려 나오는 순서에 따라 고통 징후가 비례적으로 늘어났다. 자기가 아는 쥐가 고통을 당하는 걸 보면 더 고통스럽게 느낀다. 쥐도 '고통 전이'를 체감하며 공감한다는 명백한 증거들이다.
공감은 우리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다. 내가 흰쥐의 생사에 공감하는 것 못지않게 흰쥐들도 서로 공감한다. 공감은 우리 포유동물 초기부터 진화해온 본능인 듯싶다. 쥐는 지혜와 풍요의 동물이기에 앞서 공감의 상징이다. 경자년이 우리 모두에게 훈훈한 공감의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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