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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558] 공감의 해, 경자년

바람아님 2020. 1. 29. 09:09
조선일보 2020.01.28. 03:12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돼지의 해가 저물고 쥐의 해가 밝았다. 경자년(庚子年)이니 그냥 평범한 쥐가 아니라 흰쥐의 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사람은 이름을, 쥐는 논문을 남긴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흰쥐는 생명과학 연구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실험 동물이다. 인류의 건강 증진과 생명 연장을 위해 우리나라에서만 한 해 350만 마리가 희생된다.

서울대 대학원생 시절 나는 발생학 실험을 위해 거의 1년 동안 매일 흰쥐 20마리를 죽였다. 흰쥐의 꼬리를 붙들고 앞발로 실험대 모서리에 매달리게 한 다음 목 뒤를 누른 채 순간적으로 꼬리를 잡아당겨 경추(頸椎)를 분리하고 배를 갈라 난소를 꺼내 배양액에 담아내는 일을 수천 번 반복했더니 이 전 과정을 4분 내에 마무리하는 그야말로 '생활의 달인'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실수로 한 마리를 놓쳤다. 이튿날 다시 잡긴 했지만 더 이상 실험에 쓸 수 없게 된 녀석을 나는 그냥 죽여 없애야 했는데 손이 너무 떨려 결국 죽이지 못했다.

프란스 드 발의 '공감의 시대'에는 흰쥐의 공감 능력에 관한 실험 결과들이 소개돼 있다. 흰쥐로 하여금 지렛대 장치를 눌러 먹이를 받아먹도록 훈련시켰는데, 지렛대를 누르면 옆 칸의 쥐가 전기 충격을 받는다는 걸 알아차리곤 누르기를 거부했다. 같은 상자에서 쥐를 차례로 한 마리씩 꺼내 통증 실험을 하는 과정에서는 끌려 나오는 순서에 따라 고통 징후가 비례적으로 늘어났다. 자기가 아는 쥐가 고통을 당하는 걸 보면 더 고통스럽게 느낀다. 쥐도 '고통 전이'를 체감하며 공감한다는 명백한 증거들이다.

공감은 우리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다. 내가 흰쥐의 생사에 공감하는 것 못지않게 흰쥐들도 서로 공감한다. 공감은 우리 포유동물 초기부터 진화해온 본능인 듯싶다. 쥐는 지혜와 풍요의 동물이기에 앞서 공감의 상징이다. 경자년이 우리 모두에게 훈훈한 공감의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