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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560] 억울한 천산갑

바람아님 2020. 2. 12. 08:15
조선일보 2020.02.11. 03:14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박쥐에서 천산갑을 거쳐 인간으로 전파됐을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중국 화난(華南)농업대학 연구진은 최근 다양한 야생동물에서 추출한 시료들을 검사한 결과 천산갑에서 나온 바이러스 유전체 염기 서열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서열과 99% 일치한다고 밝혔다. 연구진이 분석한 천산갑 시료가 우한 화난시장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서 직접적인 경로가 판명된 것은 아니지만 천산갑이 중간 숙주일 가능성은 충분해졌다.


천산갑은 비늘로 뒤덮인 개미핥기다. 우리가 흔히 개미핥기라고 부르는 동물은 아메리카 대륙 열대지방에 살며 다른 포유동물과 마찬가지로 온몸이 털로 뒤덮여 있다. 천산갑은 특이하게 머리·몸·다리·꼬리 윗면이 마치 솔방울처럼 비늘로 켜켜이 덮여 있으며 대만과 중국 남부에서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에 걸쳐 분포한다. 길이가 30~40㎝에 이르는 긴 혀로 주로 개미나 흰개미를 잡아먹으며 위협을 느끼면 몸을 공처럼 동그랗게 말아 방어한다.


천산갑의 비늘은 예로부터 갈아 먹으면 종기를 가라앉히고 혈액 순환에 좋다 하여 한약재로 쓰인다. 이 때문에 천산갑은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되어 있는데도 대량으로 포획돼 중국으로 밀수출되고 있다. 천산갑 비늘의 화학 성분은 머리털·손톱·발톱·피부 등 상피 구조의 기본을 형성하는 각질 단백질 케라틴(keratin)이다. 비싼 돈 주고 어렵게 구한 천산갑 비늘은 화학적으로 볼 때 가끔씩 깎아 버리는 우리 손톱, 발톱과 진배없다.


이 법석판에 공교롭게도 2월 15일이 '세계 천산갑의 날'이다. 아무리 뜯어봐도 딱히 약재로 쓸 만한 게 없어 보이는데 언제부턴가 뜬금없게도 정력에 좋다는 소문까지 나돌아 중국에서는 밀수하다 적발된 천산갑 비늘이 때로 수십t에 달한다고 한다. 케라틴 쪼가리 떼려다 바이러스 혹 붙여올 일 있나? 제발 천산갑도 살리고 우리도 살자!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