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20.03.17 김홍수 논설위원)
2차 대전 때 영국은 독일의 공습으로 4만3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런던 시민은 여덟 달 동안 밤마다 폭탄 세례가 쏟아지는데도 어떻게든 일상을 꾸려 갔다.
용케 폭탄이 빗나가는 세인트 폴 대성당을 보며 '신의 가호'를 느꼈고 희망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독일 폭격기 조종사들이 우뚝 솟은 대성당을 육안 식별하는 좌표로 삼았기에 일부러 건드리지 않았다는
얘기도 있다.
▶유럽 철학사에서 대륙은 합리주의, 영국은 경험주의로 나눈다.
경험주의는 현실 인식을 중시한다. 이런 전통이 영국인의 생사관과 행복관에 녹아 있다.
셰익스피어는 "겁쟁이는 죽음에 앞서 여러 번 죽지만, 용감한 사람은 한 번밖에 죽음을 맛보지 않는다"고 했다.
존 로크는 "인간의 행복은 환경이 아니라 본인의 마음에 달렸다"고 했고, 경험주의를 이어받아 공리(功利)주의로
꽃피운 벤담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강조했다.
▶코로나 사태를 견디는 영국식 대응법이 화제가 되고 있다.
다른 나라에선 학교 문을 닫고, 군중이 모이는 스포츠와 공연을 금지하는 등 난리인데, 영국 정부는 2차 대전 때
내걸었던 구호처럼 '침착하게 하던 일을 계속하자(Keep calm and carry on)'는 입장이라고 한다.
국가 의료보험 기관은 "증상이 나타나도 집에서 일주일쯤 지켜보라"고 안내한다.
총리실 의학 담당관은 "보균자 중 10%만 발병하고 1%만 사망한다"면서 '별것 아니다'라는 식의 설명을 내놓는다.
▶보리스 존슨 총리는 "너무 일찍 강력한 통제를 하면 너무 많은 사람의 삶을 혼란스럽게 할 것"이라고 했다.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결정을 하겠다"고 한다.
문제 많은 영국 의료 체계로는 코로나 대응을 전면적으로 하기 어렵다고 한다.
지금까진 존슨 총리의 '솔직 화법'이 통했다. 지지율도 올랐다. 시민들은 거의 마스크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코로나를 '감기' 정도로 생각하고 불가피한 피해는 감수하자는 '영국식 공감대'가 생겼다는 인상도 줬다.
▶그러나 확진자가 1300명을 넘자 초조와 불안이 조금씩 터져 나오는 분위기다.
코로나는 이미 영국 병원의 수용 한계를 넘어섰다.
정부가 말은 안 해도 영국이 '집단 면역' 전략을 선택한 것이란 추측도 나온다.
국민 60~70%가 감염되면 저절로 면역력이 생긴다는 이론이다.
아무리 영국인이라도 지난 주말부터 생필품 사재기가 시작됐다고 한다.
'호들갑 떨지 말고 견디자'는 영국식 해법이 어떤 결말을 맞을지 궁금하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3/16/202003160406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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