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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잔혹사 그래픽

바람아님 2014. 2. 27. 12:14

↑ 청계천 잔혹사 그래픽.

↑ 서울 중구 수표동에 위치한 시그니처 타워에 위치한 동양그룹과 아모레퍼시픽 사옥.

 

새해들어 재계에선 '청계천 괴담(怪談)'이 다시 한번 입방아에 오르고 있습니다. 청계천 괴담은 최근 1~2년 사이 잇따른 총수구속 사건에서 비롯됐습니다.

조선시대 옛 청계천 발원지 부근인 신문로에 위치한 태광그룹을 시작으로 SK그룹, 한화그룹, 동양그룹 등 청계천가에 위치한 기업들의 총수들이 줄줄이 비리사건에 연루돼 수감되면서 '청계천은 대기업의 무덤'라는 괴담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청계천변에 자리잡은 기업들은 최근 몇 년새 각종 구설에 오르거나 경영상태가 나빠지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납품비리 사건으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현재현 회장이 사기성 CP(기업어음) 발행 혐의로 구속된 동양그룹은 자금난으로 사실상 그룹해체 수순으로 돌입한 상황입니다. 청계천변에 비교적 늦게 합류한 아모레퍼시픽과 미래에셋도 지난해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지난해초 수표동 시그너처 타워로 둥지를 옮긴 아모레퍼시픽은 이른바 '갑(甲)의 횡포' 논란의 타깃이 됐습니다. 아모레퍼시픽 영업팀장이 지난 2007년 대리점주에 폭언을 하며 대리점 운영 포기를 강요하고 대리점주를 술자리에 불러내 욕설을 하는 녹음파일이 공개돼 논란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를 계기로 국회에서 아모레퍼시픽의 대리점 계약 불공정성을 지적하는 지적이 잇달아 제기됐고, 논란이 확산되면서 주가가 하락하는 비운을 맞기도 했습니다.

결국 손영철 아모레퍼시픽 사장이 국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해 "불공정계약을 시정하겠다"고 하면서 논란이 일단락됐는데, 직원들 사이에서는 '사옥을 잘못 정한 탓이 아니냐'는 소문이 돌기도 했답니다.

용산 사옥을 재건축하면서 임시 사옥으로 시그니처 타워를 선택했는데, 하필이면 괴담의 중심지에 들어와 사서 고생하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왔다는 것이죠.

2011년 10월 을지로 센터원빌딩에 입주한 미래에셋 역시 청계천변으로 옮긴 이후 큰 재미를 못보고 있다고 합니다.

증권업계 불황 여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신흥국 경기 침체로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지역에 투자하는 미래에셋의 주력 펀드 운용실적이 좋지 못하기 때문이죠.

게다가 올초에는 미래에셋 증권의 강남지점 직원이 고객이 맡긴 수십억원의 자금을 자기 멋대로 투자하다 사기죄로 피소당하는 사건도 발생해 구설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한국관광공사도 이참 전 사장이 성인업소 출입 논란으로 지난해 11월 사퇴하기도 했습니다.

청계천 소재 대기업의 불운을 청계천 복원방식을 둘러싼 풍수학적 맥락에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인공하천인 청계천은 한강 하류의 물을 끌어올려 흘려보내는 방식으로 유지 운영되고 있습니다. 한강 자양 취수장에서 매일 10만톤의 물을 퍼올려 정수한 뒤 총 길이 11㎞의 송수관을 통해 청계천으로 보내고 모자라는 물은 지하철에서 나오는 지하수로 채우고 있습니다.

일부에선 이같은 청계천의 자연의 물길을 역류하는 것이기 때문에 풍수학적으로 좋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한 관계자는 "혈류를 역류시키는 것인데, 경제에 도움이 되겠냐"고 하더군요.

그러나 주류 풍수학계에서는 이런 지적이 근거가 없다고 합니다.

청계천이 애초부터 인공적으로 개발된 하천이었다는 점도 이런 '청계천 혈류 역류론'의 반박 근거로 활용되기고 합니다.

고려시대까지 이름 없는 자연하천이었던 청계천은 조선 초기에 명당수로 개발됐습니다. 명당수란 왕조가 그 기운을 밝게 하기 위해 궁궐 가까이 둔 물길을 의미합니다.

서울의 도심부를 관통하며 중랑천에 이르는 13.7㎞의 청계천은 조선 태종과 영조 때 대공사를 통해 지금의 형태를 갖추게 됐다고 합니다. 애초부터 청계천은 인공하천이었기 때문에 청계천 개발을 불운의 원인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죠.

풍수학계에서는 오히려 청계천 주변은 조선시대부터 경제활동의 중심지였다는 점을 거론하기도 합니다.

한화그룹 본사 앞 장통교는 조선시대 상거래로 부를 쌓은 상인들이 많이 살았던 곳이라고 합니다.

미래에셋이 입주한 센터원 빌딩 터는 조선시대 화폐를 만들던 주전소 자리이고, 동양그룹과 아모레퍼시픽이 입주한 시그니처 타워는 조선시대 역대 왕들의 영정을 모신 영희전(永禧殿)을 왕래하던 길목이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풍수학계에서는 '청계천 괴담'을 실체없이 부풀려진 괴담의 전형적인 사례로 꼽기도 합니다. 위기관리에 실패한 기업들이 애꿎은 땅을 탓하고 있다는 시각입니다.

일각에서는 두산그룹의 예를 들며 괴담론을 반박하기도 합니다. 두산그룹은 청계천 끝편인 동대문 부근의 두산타워를 사옥으로 쓰고 있습니다.

두산그룹이 최근 건설부문의 유동성 문제로 어려움을 겪기는 했지만, 1999년 두산타워로 사옥을 옮긴 후 중공업, 기계·중장비 부문으로 그룹의 사업구조를 개편해 성공하고 있다는 점을 거론하고 있는 것이죠.

최근 서울 도심에서는 청계천 주변으로 재개발이 활발히 이뤄지면서 곳곳에 고층 빌딩들이 들어서고 있습니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청계천 주변이 강남과 비견되는 서울의 비지니스 센터가 될 것이라는 관측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 1~2년 사이 청계천 주변에 위치한 대기업들의 잔혹사가 이 곳으로 사업장을 옮기려는 기업들에게 어떻게 작용할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