忠州房/곰탱이 日記

충주산성

바람아님 2013. 1. 15. 11:17

충주산성은 해발 636m의 금봉산(錦鳳山), 속칭 남산(南山) 정상에 위치하여 남산성 또는 금봉산성으로 불

리기도 한다.

[조선약사(朝鮮略史)]에는 백제 구이신왕 시대에 쌓은 것으로 개로왕 21년(475)에 보수하여 적을 방어하였다고 한다.

 

고려 고종 40년(1253) 12월, 몽골의 포위공격을 받고 70여일간의 항전 끝에

방호별감 김윤후(金允侯) 의 탁월한 지도력으로 몽골군을 격퇴한 승전기록이 있다.

 

이 성은 충주 동쪽의 계명산과 서쪽의 대림산성, 북쪽의 탄금대 토성지와 함께 충주를 사방에서 방어하기 위하여

험한 산세를 이용하여 돌로 쌓은 산성이다.

구조는 외축 내착형이며 산 정상을 이어 쌓은 퇴뫼식의 산성으로 축성재료는 석재를 고루 쌓은 전형적인 방식을 보인다.

 

- 충주산성 위치- 


 

- 위성 조감도 -

2010-10-30 

 ** 1983년 충주시 조사에 의하면 성 둘레는 1,145m이지만, 중간중간이 무너지고 5개소에 775m의 성곽이 남아 있다.

성안의 넓이는 46,524㎡이고, 성벽의 높이는 7~8m에 이르고 있다. 성안에는 우물자리가 2개소 있다.

 동서의 산 능선상에 문지(門址)가 있고 동쪽으로 수구가 있다. 연차적으로 복원하고 있다.

성안에서 신라, 백제계의 토기 조각 및 기와쪽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 창용사(蒼龍寺)-


** 고려시대에 세워진 아담한 고찰, 창룡사는 남산 남쪽기슭에 자리잡고있다.

 산성을 찾아가는 길을 잘못 들어 만난 사찰이다.  

 

-대웅전의 문설주- 


 

 -창룡사 다층청석탑(多層靑石塔)-


 **절 앞마당 끝 절벽 위에 놓여있는 사람 앉은 키 만한 이 탑 옆에는 스테인리스 안내판이 서 있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문화재"라는 안내글을 담은.....

안내판이 무색하게 탑 옆에는 깨진 기왓장이 쌓여있다. 사각형의 탑신은 없어지고 판개석만 남아 있는 것이다.

 

- 복장 단정치 않은 고도비만 이 분(?) - 


** 사찰에서 의례 만나게 되는 고도 비만의 이 분이 뉘신지?

 

- 마즈막 재(心項峴)- 


 ** 해발 775m의 계명산과 636m의 남산이 만나는 계곡을 넘어가는 260m 높이의 언덕이 "마즈막 재" 이다.(지도 참조)

<<옛날에 단양, 청풍, 수산 및 경상, 강원 일부지방의 죄수를 충주 감영으로 이송할 때 이 고개를 넘으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어  마지막 재가 되었다는 애처로운 전설이 있으며 계명산 옛이름이 심항산으로 마음(心), 목(項), 재(峴)로

 후에 마수막재라 부르던것이 흐르는 세월과 함께 "마즈막 재"로 변형되어 불려 온 것이다.>>(비문에서 발췌)

 

이 마즈막 재에 주차장이있고 북쪽의 계명산 등산로와 충주산성으로 오르는 탐방로와 임도(林道)가 시작된다.

비석 옆에는 최근에 세운 "참전 수훈자 기념비"가 있고 맞은편에는 "대몽항쟁전승기념탑"이 세워져있다.

 

- 대몽항쟁전승기념탑-


 **충주는 고려의 대몽항쟁사에 있어 가장 주목되는 지역으로 충주에서는 총 9건의 항전기록이 있는데

그중 특히 1253년(고종40) 몽고의 5차 침입 시 충주산성에서 70일간 전개된 치열한 공방전은 대몽항쟁사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당시 방호별감 김윤후(金允侯)는 극한의 악조건에서도 뛰어난 지도력으로 몽고군을 격퇴하였다.

충주인들의 국난극복을 역사적 귀감으로 삼고자 기념탑을 세웠다.

 

 - 남산 중턱에서 보이는 충주호-


 

- 임도(林道) - 


 ** 잘 닦여진 도로가 정상까지 이어져있고 중턱에는 통신시설이 있어 임도인지 전술도로인지는 불분명하다.

 

- 역사기록화(歷史記錄畵)-


 ** 임도를 따라 길가에는 충주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기록화 13점이 배치되어 있다.

 


 

 - 산성으로 이어지는 임도-


 

- 전망대 -


 ** 산 중턱에는 충주시가지가 보이는 방향에 나무로 만들어진 전망대가 있다.

 

 -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이는 시가지-


 

 - 산 정상 부근 임도에서 보이는 북쪽 성벽-


 

  - 서북 쪽 성벽 -


 

 - 서문 -


**서문으로 오르는 나무계단을 이용 해 성내로 들어갈 수 있다. 

 

- 서문 앞, 성내에 서 있는 수세가 힘차고 수형이 아름다운 소나무- 


 

 - 산성에서 북쪽으로 보이는 풍경-

 

 

- 서문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는 북벽- 


 ** 북벽은 복원이 이루어져 옛 모습을 찾은듯이 보인다.

 

- 서문에서 계곡으로 내려온 성벽-


 

 

 

 ** 가파른 산세와 높은 성벽은 몽고군의 공격을 막을 수 있을것 같이 보였다.

 

 - 계곡에서 올려다 본 성벽-


 ** 성벽 끝에 서문 앞에 선 소나무가 보인다.

 

-북문과 우물 -


 ** 성문은 다른 성곽의 현관식 성문이 아닌 철저한 전술적 방어에 유리한 함정형태의 문이다.

성문을 부수고 바로 진입할 수 있는 성문이 아니다.

 

- 함정식 성문 내벽- 


 

 - 우 물-


 ** 우물 윗쪽으로 보이는 흰색의 담장이 출입금지 차단벽으로 더 이상 답사가 불가능하다.

 

- 동쪽으로 올라가는 북벽-


** 나무사이로 보이는 흰 부분이 출입금지 차단벽이다.

 

 -북벽의 말단 -

 

 ** 북벽의 말단으로부터 동쪽 성벽이 시작되지만 진입이 금지되어있다.

 

-서문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성벽-


 

 - 남쪽 성벽 -


 

 - 남쪽 탐방로로 이어지는 성벽-


 ** 올려다 보이는 제일 높은곳에 탐방로가 연결된다.

 

- 허물어진 남벽 -


 

 - 남쪽 성벽 끝에 서 있는 쌍간 노송 -


 ** 남쪽 성벽의 말단에 이 노송이 서 있고 이곳으로부터 동쪽 성벽은 출입금지 구역이다.

 

- 출입금지 팻말 앞에서 돌아서는 탐방객-


 

-대몽항쟁 전승 기념탑-  


 ** 답사 시작 때 멀리서 바라보았던 기념탑을 답사를 끝내면서 찾았다. 저녁 달이 서쪽 하늘에 걸려있다.

 

 -답사를 끝내면서 맞는 일몰-


 -Epilogue-

연무가 낀 날씨 때문에 찍은사진은 희뿌옇게 나오고  성벽 위치에 따라 음지와 양지의 콘트라스트가 너무

 심해 사진이 지저분해서 동행한 사람의 사진으로 많이 보완했습니다. 산성에 대한 현지의 안내 시설은

 전혀 없고 충주지역의 7개의 산성을 산성군으로 일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잠정 등록했다는게 믿

어지지 않았습니다.

GPS  믿고 찾아간 산성 번짓수가 엉뚱한 곳이어서 시간을 많이 낭비하여 답사도 부실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