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 대형서점에 특별 매대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혐한 서적'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발매된 대표적인 혐한 서적 '매한론(어리석은 한국론)'은 석달 만에 20만 부 넘게 팔린 것으로 공식 집계됐습니다. 일본 지지(時事) 통신 서울특파원 출신이 쓴 책인데, 여기에 묘사되는 한국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국제적인 비상식국가'
'反日이라면, 금세 들통날 거짓말도 괜찮은 나라'
'진짜 무서울 정도로 인간 차별하는 나라'
일일이 내용을 옮기기에도 짜증나는, 노골적이고 악의적인 책입니다. 한국에도 이런 상황이 보도되면서, '반일 감정'은 더욱 고조되고 있죠. 당연한 반응입니다. 하지만 열폭(?)하고, 맞받아 저주(?)하는 것만으로는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는 게 답답한 일이죠.
조금 차분하게, 먼저 이 따위 책들이 유행하는 이유부터 짚어보죠.
첫째, "팔리니까 출판하고, 출판되니까 팔린다" 혐한은 일본 출판계의 마케팅 트렌드가 됐습니다.
"팔리니까 출판하고, 출판되니까 팔린다"는 말은, 일본 신문에 소개된 출판계 인사의 설명입니다. '의료' '건강' '개와 고양이' '요리' '다이어트' 이런 류의 붐과 마찬가지라는 얘깁니다. 일단 유행이 시작된 이상, 안 팔릴 때까지는 또는 다른 '붐'이 일기까지는 혐한 마케팅과 출판이 계속될 것 같습니다.
둘째는 최근 한국에 대한 일본인들의 국민감정 자체가 악화됐습니다.
일본 내각부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을 친근하게 느끼느냐"라는 질문에 대해 "그렇다"는 응답이 올해는 40.7%로 나타났습니다. 최근 2년 연속 40% 정도인데, 지난 2004년부터 2011년까지는 60% 안팎을 기록해 왔습니다. (일본 사회와 언론이, 그 원인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분석을 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죠)
지상파나 신문에서(산케이 신문을 제외하고) 잘 다루지 않는, 한국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을 대놓고 터뜨리는 '혐한 서적'에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이들이 있다는 겁니다. 그런 '혐한 서적 팬'이 얼마만큼 있는지, 전체에서 비율이 어느 정도 되는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일본 인구 1억 2천만 명 중에 1/100만 돼도 120만 명입니다.
세번째는, 역설적이게도 일본이 한국을 대등한 상대로 인식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일본을 의식하면서 성장했죠. "일본에게만은 절대 지지않겠다" 이런 의식이 강하죠. 역사 문제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해자인 일본은 정작 한국을 잊고 살았습니다. 일본이 (일반 국민 차원에서) 한국을 알기 시작한 건 15년 안팎입니다. 젊은 친구들 중에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처음으로 한국이 이웃나라라는 걸 알았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믿기 힘든 얘깁니다만, 13년째 일본에서 살고 있는 SBS 도쿄지국 카메라기자의 솔직한 증언입니다. 그 친구들 참...사회나 지리도 안 배웠나 싶습니다만)
흔히들 '욘사마' 배용준 씨를 시작으로 한 한류 때문에 일본이 한국을 좋아하게 됐다고 생각하는데, 반만 맞는 얘깁니다. 한류의 영향은 제한적입니다. 일본 사람들이 한국을 좋아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2001년 고 이수현 씨 사건입니다. 도쿄 유학생인 이수현 씨가 철로에 떨어진 일본 취객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사건입니다. 고 이수현 씨의 의로운 죽음 이후로, 일본이 한국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는 게 일본에 오래 산 한국 사람들의 공통된 지적입니다.
고 이수현씨 사건에 한류가 겹쳤던 당시(2000년대 초중반) 출판계의 붐은, '한국 알기, 한국 다시 보기'였습니다. 그래서 쏟아진 책들이 '소니를 앞지른 삼성' '통상과 대미 외교에서 탁월한 한국 정부' 뭐 이런 것들입니다.
한국이 어디있는 나라인지도 모를 때는 그냥 무관심했다면, 이제는 대등한 상대로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좋아하는 사람 못지 않게 싫어하고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겁니다.
다시 책 얘기로 돌아가서,
그럼 이 따위 '혐한 서적'에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까요? 특히 정신건강에.
"혐한 서적 붐의 기저에는 일상에 대한 울분"
그제(24일) 요미우리 신문 서평이 일종의 해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논픽션 작가인 카와이 씨의 "(혐한 서적) 붐의 바닥에는 일상의 울분?"이라는 글입니다. 물론 일본 사람들에게 주는 해법입니다만, 우리에게도 참고가 될 것 같습니다.
카와이 씨는 "매한론 같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이유는 스트레스 발산"이라고 단정합니다. 이어서 "혐한 서적 붐의 기저에 감춰진 것은, 한국에 대한 감정보다는 어쩌면 일과 가정, 일상에 대한 울분일지도 모른다"고 분석합니다. "양식과 상식이 있다면 공공연히 떠들 수 없는 터부를 깨뜨리는 카타르시스! 술집에서 술주정하는 대신, 산책하는 것 대신 이런 책을 읽으면서 인생의 씁쓸함을 발산하는 것 아니냐?"고 묻고 있습니다.
20년 장기불황.
취직도 잘 안되고, 미래는 불투명한 답답한 일상.
아베노믹스 이후, 대기업은 순이익이 쌓여도 보통 사람은 도무지 체감할 수 없는 경기.
이런 일상에 대한 울분이 엉뚱하게 '혐한'으로 삐져나오고 있다는 겁니다.
일본 특파원으로서도 고민입니다.
"혐한 서적 대유행" "아베가 또 이런 망언을 했다" 이런 감정적이고 자극적인 기사를 '있는 그대로' '될수록 빨리' 전달하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런 형편없는 소리에 반대하고 성찰하는 목소리를 함께 전달해서 '중심을 잡는 편'이 맞는지. 일과 일상의 스트레스를 발산하는 '울분에 찬 술주정' 같은 기사를 쓰지 않도록, 잠깐이나마 산책이라도 나서야 겠습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국제적인 비상식국가'
'反日이라면, 금세 들통날 거짓말도 괜찮은 나라'
일일이 내용을 옮기기에도 짜증나는, 노골적이고 악의적인 책입니다. 한국에도 이런 상황이 보도되면서, '반일 감정'은 더욱 고조되고 있죠. 당연한 반응입니다. 하지만 열폭(?)하고, 맞받아 저주(?)하는 것만으로는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는 게 답답한 일이죠.
조금 차분하게, 먼저 이 따위 책들이 유행하는 이유부터 짚어보죠.
첫째, "팔리니까 출판하고, 출판되니까 팔린다" 혐한은 일본 출판계의 마케팅 트렌드가 됐습니다.
"팔리니까 출판하고, 출판되니까 팔린다"는 말은, 일본 신문에 소개된 출판계 인사의 설명입니다. '의료' '건강' '개와 고양이' '요리' '다이어트' 이런 류의 붐과 마찬가지라는 얘깁니다. 일단 유행이 시작된 이상, 안 팔릴 때까지는 또는 다른 '붐'이 일기까지는 혐한 마케팅과 출판이 계속될 것 같습니다.
둘째는 최근 한국에 대한 일본인들의 국민감정 자체가 악화됐습니다.
일본 내각부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을 친근하게 느끼느냐"라는 질문에 대해 "그렇다"는 응답이 올해는 40.7%로 나타났습니다. 최근 2년 연속 40% 정도인데, 지난 2004년부터 2011년까지는 60% 안팎을 기록해 왔습니다. (일본 사회와 언론이, 그 원인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분석을 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죠)
지상파나 신문에서(산케이 신문을 제외하고) 잘 다루지 않는, 한국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을 대놓고 터뜨리는 '혐한 서적'에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이들이 있다는 겁니다. 그런 '혐한 서적 팬'이 얼마만큼 있는지, 전체에서 비율이 어느 정도 되는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일본 인구 1억 2천만 명 중에 1/100만 돼도 120만 명입니다.
세번째는, 역설적이게도 일본이 한국을 대등한 상대로 인식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일본을 의식하면서 성장했죠. "일본에게만은 절대 지지않겠다" 이런 의식이 강하죠. 역사 문제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해자인 일본은 정작 한국을 잊고 살았습니다. 일본이 (일반 국민 차원에서) 한국을 알기 시작한 건 15년 안팎입니다. 젊은 친구들 중에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처음으로 한국이 이웃나라라는 걸 알았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믿기 힘든 얘깁니다만, 13년째 일본에서 살고 있는 SBS 도쿄지국 카메라기자의 솔직한 증언입니다. 그 친구들 참...사회나 지리도 안 배웠나 싶습니다만)
흔히들 '욘사마' 배용준 씨를 시작으로 한 한류 때문에 일본이 한국을 좋아하게 됐다고 생각하는데, 반만 맞는 얘깁니다. 한류의 영향은 제한적입니다. 일본 사람들이 한국을 좋아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2001년 고 이수현 씨 사건입니다. 도쿄 유학생인 이수현 씨가 철로에 떨어진 일본 취객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사건입니다. 고 이수현 씨의 의로운 죽음 이후로, 일본이 한국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는 게 일본에 오래 산 한국 사람들의 공통된 지적입니다.
고 이수현씨 사건에 한류가 겹쳤던 당시(2000년대 초중반) 출판계의 붐은, '한국 알기, 한국 다시 보기'였습니다. 그래서 쏟아진 책들이 '소니를 앞지른 삼성' '통상과 대미 외교에서 탁월한 한국 정부' 뭐 이런 것들입니다.
한국이 어디있는 나라인지도 모를 때는 그냥 무관심했다면, 이제는 대등한 상대로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좋아하는 사람 못지 않게 싫어하고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겁니다.
다시 책 얘기로 돌아가서,
그럼 이 따위 '혐한 서적'에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까요? 특히 정신건강에.
"혐한 서적 붐의 기저에는 일상에 대한 울분"
그제(24일) 요미우리 신문 서평이 일종의 해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논픽션 작가인 카와이 씨의 "(혐한 서적) 붐의 바닥에는 일상의 울분?"이라는 글입니다. 물론 일본 사람들에게 주는 해법입니다만, 우리에게도 참고가 될 것 같습니다.
카와이 씨는 "매한론 같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이유는 스트레스 발산"이라고 단정합니다. 이어서 "혐한 서적 붐의 기저에 감춰진 것은, 한국에 대한 감정보다는 어쩌면 일과 가정, 일상에 대한 울분일지도 모른다"고 분석합니다. "양식과 상식이 있다면 공공연히 떠들 수 없는 터부를 깨뜨리는 카타르시스! 술집에서 술주정하는 대신, 산책하는 것 대신 이런 책을 읽으면서 인생의 씁쓸함을 발산하는 것 아니냐?"고 묻고 있습니다.
20년 장기불황.
취직도 잘 안되고, 미래는 불투명한 답답한 일상.
아베노믹스 이후, 대기업은 순이익이 쌓여도 보통 사람은 도무지 체감할 수 없는 경기.
이런 일상에 대한 울분이 엉뚱하게 '혐한'으로 삐져나오고 있다는 겁니다.
일본 특파원으로서도 고민입니다.
"혐한 서적 대유행" "아베가 또 이런 망언을 했다" 이런 감정적이고 자극적인 기사를 '있는 그대로' '될수록 빨리' 전달하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런 형편없는 소리에 반대하고 성찰하는 목소리를 함께 전달해서 '중심을 잡는 편'이 맞는지. 일과 일상의 스트레스를 발산하는 '울분에 찬 술주정' 같은 기사를 쓰지 않도록, 잠깐이나마 산책이라도 나서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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