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國際·東北亞

선우정의 글로벌 터치 - 악마와 키스하는 '전략적 자기 催眠'

바람아님 2014. 3. 29. 10:29

(출처-조선일보 2014.03.29 선우정 국제부장)


선우정 국제부장 사진식민지 역사, 한국만큼 제대로 청산한 곳 없어
미국의 아베 비판은 동북아 안보 위협 때문
역사 논쟁, 안보 흔들면 한국, 약한 고리로 전락
戰線 한계 명확한 것이 통일 단계 국민적 덕목

눈을 세계로 돌리면 신기한 부분이 있다. 식민지 역사 청산을 우리만큼 집요하게 주장하는 나라를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심지어 영국의 피식민지 국가들은 독립 이후에도 자발적으로 영연방(英聯邦)에 남았다. 영국이 그들을 관대하게 대한 것도 아니다. 독립 후 큰 도움을 준 것도 아니다. 그래도 영연방 행세하는 걸 보면 '쓸개 빠진 나라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사실 이 나라들은 '전후(戰後) 질서'에 안주했을 뿐이다. 2차 세계대전 후 역사 청산은 승전국이 패전국 지도자를 심판하는 일이었다. 식민지에서 일어난 제국주의 악행(惡行)은 심판 대상에서 빠졌다. 승전국이 제국주의 국가였으니 자기 목을 조일 리 없었다. 1951년 미국이 일본과 맺은 강화조약은 전후 질서의 본질을 알려준다. 조약이 규정한 배상권은 교전국의 것일 뿐 피식민지 국가엔 부여되지 않았다. 한국의 배상 요구에 일본이 코웃음 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불만이면 미국에 따지라"는 것이다.

한국이 대단한 것은 그래도 외롭게 저항했다는 점이다. 일본이 패전국이라 만만했기 때문은 아니다. 일본의 침략을 당한 필리핀·베트남·미얀마·인도네시아는 배상금을 받고 줄줄이 과거를 묻었다. 식민지였던 대만에서 총통을 했다는 어떤 양반은 친일(親日) 신념을 가누지 못하고 야스쿠니 신사까지 참배했다.

한국이 더 대단한 것은 그러면서도 챙길 건 챙겼다는 점이다. '경제협력자금'이란 불쾌한 이름이었지만 일본으로부터 받은 유·무상 5억달러는 일본 때문에 폐허가 된 교전국이 받은 배상금과 비슷한 규모였다. 당시 경제기획원이 가계부 적듯 꼼꼼히 작성한 청구권자금 백서를 보면 눈물이 난다. 포항제철을 건설하고 남은 자투리 푼돈까지 가난한 공고생을 교육하기 위한 실험 기자재 수입에 투입했다. 오직 조국의 미래를 위해서만 쓴 것이다. 그때 연마한 빡빡머리들이 훗날 한·일 산업 역전극을 연출했으니 실로 '조상의 피값'은 헛되지 않았다.

눈을 세계로 돌리면 한국만큼 식민 시대를 제대로 청산한 나라가 없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인정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 때문에 비판받는 것도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게 잘 극복했는데 왜 지금껏 "사죄하라, 배상하라" 주장하느냐는 것이다. 물론 일본이 조변석개(朝變夕改) 자세로 역사를 지나치게 농락하기 때문이란 우리의 반론은 타당하다.

우리는 아베 비판과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세계에 먹혀들어 가는 장면을 보면서 미국이 '과거 청산' 주장을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이 아베를 비판하는 것은 일본의 우경화가 동북아 안보를 위협한다는 우리 주장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동조 역시 위안부가 보편적 인권 문제라는 주장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식민 시대 청산'이란 한국 시각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다.

이것은 반대의 경우를 알려준다. 역사 논쟁이 동북아 안보를 흔드는 수준에 이르면 화살이 한국으로 방향을 틀 것이란 점이다. 
역사가 동력(動力)에서 짐으로 변하는 것이다. 그 경계선은 어디일까. 일본은 미국이 짜놓은 동북아 안보의 핵심 기둥이다. 
일본이 밉다고 미국의 질서에서도 멀어지려 한다면 그 순간 한국은 동북아 안보의 '약한 고리'로 전락한다. 
역사를 앞세운 중국의 환대, 환대에 대한 우리의 정서적 유대감이 국제사회에 어떤 시그널을 주는지 성찰이 필요하다.

누가 뭐래도 우리는 "배상하라, 사죄하라"며 싸울 것이다. 하지만 전선(戰線)의 한계도 명확해야 한다. 더러워도 삼키고, 
악마와도 키스하는 '전략적 자기 최면'은 통일의 단계에서 반드시 갖춰야 할 국민적 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