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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148] 소리 화석

바람아님 2014. 4. 12. 20:51

(출처-조선일보 2012.02.13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2010년에 작고한 시카고대의 괴짜 진화생물학자 리 밴 베일런(Leigh Van Valen)은 숱한 이야깃거리를 남겼다. 그에 대해 내가 들은 이야기 중 가장 황당한 것은 그가 어느 학회에서 실제로 재현했다는 공룡의 구애 노래에 관한 이야기였다. 강연장 가득 모여 앉아 그의 기조강연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쿵 소리에 모두 뒤를 돌아보았단다. 거기에는 두툼한 백과사전을 집었다 떨어뜨렸다 하는 행동을 반복하며 걸어오는 긴 수염의 노교수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밴 베일런 교수였다. 단상에 오른 그는 다짜고짜 "이것이 그 옛날 공룡들이 걸을 때 나던 소리다"라고 하더란다. 영화 '쥐라기 공원'에서 티라노사우루스가 접근할 때 컵 속의 물이 흔들리며 나던 소리를 떠올리면 여기까지는 들어줄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이어서 거의 괴성에 가까운 난해한 곡조 하나를 읊어대곤 그게 공룡이 구애할 때 내던 소리라는 것이었다. 공룡이 지구에서 사라진 게 적어도 6500만년 전이고 우리 현생인류가 등장한 게 겨우 25만년 전의 일인데, 도대체 그가 무슨 재주로 공룡들의 노랫소리를 들었단 말인가?

우리는 여전히 공룡들이 어떤 소리를 냈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최근 그들이 들었을지도 모르는 여치의 소리를 재현해낸 과학자들이 있다. 지난 2월 6일자 미국과학한림원회보(PNAS)에 실린 논문에서 중국의 고생물학자들과 유럽의 생물역학자들은 특별히 잘 보전된 중생대 여치 화석의 미세구조를 바탕으로 그 옛날 그들이 냈음 직한 소리를 재생했다고 보고했다. 화석여치의 날개에 돋아 있는 발음기관의 돌기 구조를 59종의 현생 여치들의 구조 및 소리와 비교하여 유추해낸 소리는 6400헤르츠의 고음이었다. 이는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피아노의 오른쪽에 흰 건반 네 개를 추가해야 낼 수 있는 소리이다. 공룡들의 고막이 성할 날 없었을 듯싶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지금으로부터 1억6000만년 전 중생대 숲에는 폭포와 바람 소리를 배경으로 이미 곤충과 개구리들의 합창이 흐드러졌을 것이란다. 이번 여름 숲 속에서 여치들의 노랫소리를 들으면 그 옛날 그곳을 배회하던 공룡들도 함께 떠올려보기 바란다. 연주자는 그대로인데 세월이 흐르며 청중만 바뀐 셈이다. 누가 그랬던가, 삶은 짧지만 예술은 영원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