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活文化/感動·共感

[사진의 기억] 눈 오는 날의 기다림

바람아님 2024. 1. 20. 01:29

중앙SUNDAY 2024. 1. 20. 00:06

점점 눈발이 거세지는데 기척이 없다. 아무리 목을 빼고 기다려도 쉽사리 오시지 않는 엄마 대신 소리 없이 눈만 내리고 있다. 이 사진을 보면 시인 기형도의 ‘엄마 걱정’이란 시가 떠오른다.....집안에서도 털모자를 쓰고 완전무장을 해야 할 만큼 온기가 없는 집에서 오로지 엄마가 빨리 돌아오시기만 기다리는 ‘집 보는 아이’는 성에가 허옇게 얼어붙은 창밖으로 고요히 눈 오는 소리를 듣고 있다. 이대로 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게 될지 모르겠다. 

어린 시절에 홀로 집에서 엄마를 기다려본 사람은 기억할 것이다. 눈 크게 뜨고 애타게 기다리면 안 오시다가 제풀에 지쳐 스르르 잠들면 어느새 저녁 밥상 차려 나를 깨우던 엄마. 어둑한 방에서 눈 비비며 어리둥절하다가 내 눈앞에 있는 엄마를 확인하면 괜히 눈물이 났다.

기다리는 시간은 언제나 길다. 그러나 끝내 올 것이라고 믿고 기다릴 때, 기다림은 시간 낭비가 아니라 오히려 누군가를 오롯이 생각해보는 소중한 시간이 된다. 그럴 때 기다림은 설렘의 시간이 되고 만남의 기쁨과 비례한다. 이제는 간절히 기다릴 사람조차 없는 나이에 이르고서야 어릴 적 엄마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던 그 시간이 행복이었음을 깨닫는다.


https://v.daum.net/v/20240120000622167
[사진의 기억] 눈 오는 날의 기다림

 

[사진의 기억] 눈 오는 날의 기다림

점점 눈발이 거세지는데 기척이 없다. 아무리 목을 빼고 기다려도 쉽사리 오시지 않는 엄마 대신 소리 없이 눈만 내리고 있다. 이 사진을 보면 시인 기형도의 ‘엄마 걱정’이란 시가 떠오른다.

v.daum.net

 

엄마 걱정

- 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 기형도 시집 「입 속의 검은 잎」(문학과지성사, 1989년) 중에서

집 보는 아이, 전북 부안, 1977년 ⓒ김녕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