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24. 10. 15. 00:11
세계가 K컬처 동경하는 시대
일등공신은 외국인 번역자들
노벨 문학상 받고도 왈가왈부
픽션은 역사도 다큐도 아니다
10여 년 전 미국 연수를 갔다가 마트 계산대에서 언어적 충격을 받았다. “Paper or Plastic?” 페이퍼 뭐라고? 처음엔 알아듣지 못했다. 미국인이 충청도 속도로 느리게 다시 물었다. “Paper, or, Plastic?” 그 영어 실력으로 어쩌자고 아메리카에 왔어, 하는 표정으로. 구매한 물건을 종이봉투와 비닐봉지 중 무엇에 담을지 묻는 것이었다. 성문종합영어로 배운 이론과 실제는 사뭇 달랐다. 소통이 안 되는 외로움의 괴로움이여.
올해 노벨 문학상은 그래서 더 놀라운 일이다. 한강이 세계적인 작가가 되도록 길을 터 준 것은 문학 에이전시나 글로벌 출판사가 아니라 한국 문학에 흥미를 느낀 외국인 번역가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번역에는 ‘출발어’ ‘도착어’가 있다. 직항이 없을 때 환승하는 것은 그 세계에서도 매한가지. 변방의 언어로 쓴 글일수록 결국 영어로 어떻게 도착하는지가 중요하다. 한국 문학은 영어(직항) 또는 프랑스어(환승)로 옮겨져야 비로소 주류 무대에 진출한 것이다.
한국인 첫 노벨 문학상의 숨은 MVP는 데버라 스미스다. 한국어를 독학하다 한국학 석·박사 과정을 밟은 이 영국 여성은 좋아하는 작품을 공유하고 싶어 자발적으로 ‘채식주의자’를 번역했다....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4관왕 뒤에도 미국인 번역가가 있었다.
한국 사회 일각이 한강의 소설을 둘러싼 왈가왈부로 소란하다. 어떻게 읽든 독자의 자유지만 픽션은 역사도 다큐도 아니다....편 가르기는 그만하자, 정신 건강에 해롭다. 창작과 번역 작업을 더 지원하고 제2의 데버라 스미스, 달시 파켓이 등장할 수 있도록 저변을 확대해야 한다. 잔칫상을 엎을 때가 아니다.
https://v.daum.net/v/20241015001122729
[태평로] 노벨 문학상 ‘편 가르기’는 그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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