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24.10.20. 05:35
“광원 여러분, 간호원 여러분. 난 지금 몹시 부끄럽고 가슴이 아픕니다.… 우리 후손만큼은 결코 이렇게 타국에 팔려나오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1964년 12월 10일, 대한민국 국가원수 최초로 서독(현 독일)을 찾은 고(故) 박정희 대통령은 파독광부와 간호사들 앞에서 눈물을 애써 참으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오전, 고국에서 대통령이 찾아온다는 소식에 이날만큼은 양복과 한복을 말끔히 차려입은 파독광부과 간호사 250여명은 뒤스부르크 교외의 한 공회당(타운홀)을 가득 메웠다. 박 대통령이 태극기가 내걸린 단상에 오르고 애국가 반주가 울려퍼지자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란 마지막 대목에서 몇몇은 흐느끼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 옆의 육영수 여사도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쳤다. 한복을 입은 아시아 최빈국의 영부인이 눈물을 훔치는 모습은 당시 서독 신문에까지 게재될 정도였다. 박정희의 당시 서독 방문은 역대 대통령의 수많은 국빈방문 중 가장 모범사례로도 얘기된다.
1964년 뒤스부르크 찾아간 박정희
“비록 우리 생전에는 이룩하지 못하더라도 후손을 위해 남들과 같은 번영의 터전만이라도 닦아 놓자”는 박정희의 다짐처럼 당시만 해도 아시아 최빈국이었던 한국은 박 대통령의 서독 방문 60년 만에 세계 10위권 경제력과 군사력을 갖춘 어엿한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 통계청에 따르면, 1964년 당시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103달러에 불과했으나,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은 3만3745달러를 기록했다.
하지만 60년 전 대한민국 국가원수 최초로 유럽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이 당시 서독 뒤스부르크의 한 공회당에서 했던 이른바 ‘눈물의 연설’과 관련해서는 지금은 기억할 만한 공간조차 제대로 남아 있지 않다.....박 대통령의 1964년 서독 연설 이후 3년 만에 터진 ‘동백림사건’으로 서독 한인사회는 발칵 뒤집혔다.
재독 한인사회의 한 관계자는 “박정희 정권 때 영남은 급속한 공업화가 진행되며 일자리가 넘쳐났던 반면, 호남은 먹고살 것이 없어 파독광부들 가운데도 호남 출신들이 상당히 많았다”며 “지역적 요인들이 뒤섞이면서 박정희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더 강화됐다”고 지적했다....."....재독 한인사회 역시 출신지역이 어디냐에 따라 평가가 첨예하게 엇갈린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한탄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1964년 12월 서독 방문과 관련한 사실은 학교 교과서에서도 종종 생략된다.....박 대통령이 당시 서독 수도 본에서 쾰른을 거쳐 뒤스부르크까지 이어지는 아우토반을 직접 달리면서 경부고속도로 건설구상이 나왔고, 뒤스부르크의 데마크(Demag)제철을 방문한 직후 포항제철 건설 구상이 나왔다는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는 교과서는 단 한 권도 없다.....하지만 지난해 작고한 백영훈 전 한국산업개발연구원장(전 국회의원)의 회고에 따르면, ‘한강의 기적’은 1964년 박정희의 서독 방문에서 시작됐다.
한편 이 같은 사정을 전해들은 경상북도는 올해 박정희 서독 연설 60주년을 맞아 뒤스부르크 공회당에 이를 기념하는 안내판이라도 붙이기 위해 뒤스부르크시 당국과 물밑접촉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백진건 전 에센 한인회장은 “박정희 대통령이 연설했던 뒤스부르크의 공회당 건물을 매입하려고 타진했는데 그러지 못해 너무나 아쉽다”며 “작은 안내판이라도 하나 내거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라고 말했다.
https://www.chosun.com/national/2024/10/20/ICVIYBQVBBFFJN7IVMCD7TVFSA/
60년전 박정희 '눈물의 연설'...서독 공회당엔 안내판 하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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