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24. 11. 1. 21:00
■ 추천! 더중플 - 시대탐구 1990년대 : 모든 오늘의 시작
한강의 기적과 민주화를 딛고 시작된 1990년대엔 개인과 개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한편에선 양적 성장에 몰두한 과거의 내달림이 성수대교 붕괴 등 대형 참사를 낳았습니다. 30년이 흐른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는 90년대의 명암, 그중 ‘필화’ 사건부터 돌아봅니다. 노벨문학상을 탄 한강 작가의 연세대 국문과 20년 선배인 고(故) 마광수 교수는 여대생 '나사라'의 섹스 라이프를 묘사한 『즐거운 사라』를 썼다가 음란하다는 이유로 옥살이를 했습니다. 사라는 이제 자유로워졌을까요? |
1992년 10월 29일 대학 중간고사가 막 끝난 무렵 이른 아침. 마광수 연세대 교수 집 전화가 울렸다. “서울지검 특수2부입니다. 조사할 게 있으니 바로 출석하십시오.” ‘그 책 때문일 테지….’ 전년에 쓴『즐거운 사라』가 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판매 불가 결정을 받고 전량 수거된 데 반발해 출판사를 옮겨 재출간한 참이었다. 윤리위는 곧바로 다시 판매 금지를 결정하고 검찰에 알렸다.
나름 모범생으로 살아왔다고 자부했다. 연세대 국문과에 수석 입학해 모든 과목을 A로 졸업했다. 26세에 등단한 뒤 2년 만에 홍익대 국문과 교수가 되자 ‘최연소 대학교수’로 세간의 이목이 쏠렸다. 윤동주 시의 핵심 정서를 ‘부끄러움’으로 정의하며 학문적 인정도 받았다. 그런 인생이 한순간에 금 가기 시작했다.
오후 4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음란물 배포 및 제조 혐의. 법원은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음란성이 충분히 인정된다는 이유였다. 책은 ‘금서’가 돼 독자로부터 격리됐다. 서울구치소에 갇힌 신세가 됐다. 이 모든 게 불과 몇 시간 만에 진행됐다. “민주화가 된 지 언제인데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무서운 박정희 정권 때도 야하다고 잡아가진 않았는데…!” 울화가 치밀었지만, 두려움도 엄습했다. 두 달 뒤, 마 교수는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이후 삶은 내리막. 교수직에서 해직됐다. 1998년 복직했지만 2000년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연대 학생들이 반발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다시 복직한 뒤 2016년 정년퇴직했다.....정년퇴직 1년이 막 지났을 무렵 그는 서울 동부이촌동 자택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 채 발견됐다.
https://v.daum.net/v/20241101210026997
야하다고 감방 갔다…‘한강 20년 과선배’ 마광수 죽인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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