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國際·東北亞

[김근식 칼럼]북일교섭과 각자도생의 동북아 정세

바람아님 2014. 6. 19. 11:42

각자도생 국면에서 한국만의 유일한 카드는 남북관계

김근식(경남대 교수, 정치학) 

 

동북아 정세가 혼란스럽다. 뚜렷하게 일정한 방향으로 정세 흐름이 정리되지 못하고 있다. 역내 평화와 협력이 증대되는 국면도 아니고 그렇다고 양자간 일촉즉발의 갈등과 대결이 증폭되는 양상도 아니다. 요즘 동북아 정세는 특정한 호오관계가 지배적이기 보다는 각국이 개별적으로 국가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이른바 ‘각자도생’의 형국이다.

 

  미국과 중국은 협력 속에 경쟁을 지속하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이 중국을 압박하는 속내라면 중국은 ‘신형대국관계’를 내세워 대미 협력과 견제를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미국은 일본과의 군사협력을 강화하고 한미일 삼각구도로 중국을 포위하고자 하고 중국은 북한과의 거리 유지와는 대조적으로 한중관계를 더욱 긴밀하게 하면서 한미일 협력에 균열을 시도하고 있다. 미국은 일본을 적극 끌어들여 아시아 회귀정책을 수행하고 중국은 한국을 견인해서 대일 공세에 적극 협력하고 있다. 즉 대중 압박을 위한 미일 관계의 강화와 대일 공세를 함께하는 한중 협력이 맞대응하는 셈이다.

 

  미중관계의 고차원 방정식에서 외교적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나라가 바로 북한과 일본이다. 중국은 한미일 협력을 흐트러뜨리기 위해 한국을 필요로 하고 이는 곧 북중관계의 상대적 소원함으로 귀결된다. 특히 김정은 체제가 3차 핵실험 이후 이른바 병진노선을 통해 핵보유를 기정사실화하자 중국으로서는 북한과 일정한 거리두기에 나서고 있다. 탈냉전 이후 오랫동안 정치경제적 후견역할을 했던 중국의 거리두기는 북한으로 하여금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하는 요인이다.

 

  미국이 대중압박에 나서면서 일본의 우경화를 묵인하게 되고 이는 결국 중국과 한국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중국은 일본과 센카꾸 분쟁을 고조시키면서 충돌 불사의 입장이고 한국은 위안부 문제로 일본과 상종조차 않고 있다. 중국이 한국과 함께 일본의 역사인식과 과거청산 문제를 지속적으로 압박함으로써 아베 정부는 외교적 고립에 놓여 있는 게 사실이다. 미국 말고는 일본의 우경화 행보에 대해 긍정적으로 호응하는 나라는 동북아에 없다.

  최근 북일 당국이 스톡홀름에서 극적으로 협상을 이뤄내고 향후 납치자 문제 재조사와 대북 제재 해제가 교환되는 합의를 이끌어 낸 것은 최근 동북아의 각자도생 외교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가장 적대적이었던 두 나라가 각자의 국가이익을 위해 외교적 활로로서 상대방을 돌파구로 활용한 상징적 합의인 것이다. 일본은 북한의 위협을 빌미로 군사대국화를 정당화했고 북한 역시 반일과 항일로 국가의 정통성을 확보한 나라이다. 그런 두 나라가 최근 동북아의 정세변화를 지켜보면서 서로 상대방의 외교적 이익을 챙겨줄 수 있다는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셈이다.

 

  미중관계의 큰 틀 속에서 한일관계와 중일관계 악화로 고립되었던 일본, 그리고 북중관계 소원화로 부담을 느끼던 북한이 서로 상대방의 요구사항을 수용하면서 극적 합의를 이룸으로써 동북아에서 각자의 외교적 입지를 강화하게 된 게 사실이다. 일본은 중국 한국과 과거사 문제로 갈등을 지속하던 상황에서 북일관계 정상화라는 전후 외교의 가장 큰 숙제를 다시 추진하게 되었다. 북한은 북미협상과 남북대화가 정체된 상황에서 중국과의 관계마저 상대적으로 소원해지자 일본과의 극적 합의 도출을 통해 동북아에서 자신의 외교적 고립을 완화시키게 되었다.

  실제로 일본이 합의에 따라 대북제재를 완화하게 되고 나아가 대북지원까지 하게 된다면 북한은 정치적 경제적 숨통을 틀 수 있게 된다. 최근 러시아와의 협력 강화도 북한의 외교 다변화라는 차원에서 유사한 맥락이다. 러시아 부총리 방북과 대대적인 대북투자 발표 그리고 북한 경제사절단의 러시아 방문 등 최근 북한은 과거에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러시아에 주목하고 있고 이는 극적인 북일 협상 전개와 함께 북한의 외교적 고립을 해소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일본 역시도 납치 문제로 정치적 성장을 이루었던 아베 총리가 결국 자기 집권 기간에 이 문제를 극적으로 해결하는 성과를 이루게 된다면 국내정치적인 성과는 물론이고 한국과 중국에게 당해야 했던 외교적 괄시를 북일관계 정상화로 보상할 수 있다는 계산이 충분히 가능하다.

 

  결국 북한과 일본은 각자의 외교적 처지에서 자신들이 사용할 수 있는 절묘한 카드를 꺼내 든 것이고 북일 교섭은 그런 의미에서 순식간에 동북아 정세를 흔드는 결과를 낳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의 곤혹스러움이 가장 크다. 남북관계는 이미 회생불가능으로 보이고 한일관계는 돌이키기 힘든 상황이 되어 있다. 상대적으로 낫다는 한중관계나 한미관계도 겉만 번지르할 뿐 기실 속을 들여다보면 실속이 없는 게 사실이다. 동북아 각국이 스스로 가장 우위에 있는 외교적 카드를 활용하고 있는 최근 ‘각자도생’의 국면에서 한국은 남북관계라는 독자적 카드를 시작조차 못하고 있다. 동북아에서 한국의 외교적 입지와 영향력을 증대시킬 수 있는 한국만의 유일한 카드가 남북관계임에도 아직 박근혜 정부는 적극적 대북정책을 결심하지 못하고 있다. 영원한 적도 영원한 벗도 없는 국제정세에서 유독 한국만 각자도생의 적극적 외교를 주저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