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4.06.21 지해범 논설위원실 논설위원)
공자(孔子)가 천하주유를 마치고 노(魯)나라에 돌아오자 노나라 실권자 계강자가 공자를 찾았다.
새로 실시할 징병제도에 대한 지혜를 얻기 위해서였다. 공자는 "나는 그런 일은 잘 모른다"고 했다.
계강자가 두 번 더 의견을 물었지만 공자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知)이다'고 했다.
공자는 자기 생각을 남에게 강요하지 않았고 제자에게도 끊임없이 의견을 물었다.
▶공자는 '대군을 지휘하는 장수도 포로가 될 수 있지만, 필부의 마음은 어떤 힘으로도 뺏을 수 없다'고 했다.
개인의 생각은 그만큼 소중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위대한 사상가의 말은 그가 죽고 나면 불변의 진리로 변하여 사람을 옥죄곤 한다.
공자의 '유학(儒學)'이 그랬다. 한(漢)나라부터 청(淸)나라까지 중국 역대 왕조의 교육기관은 예(禮) 경(敬) 의(義) 효(孝)
충(忠) 등 유가사상으로 백성을 통제하려 했다.
▶1993년 초 국내 어느 대학교수가 중국 학술지에
유교(儒敎)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게 됐다.
논문 번역을 맡은 재중동포 학자가 난처한 상황에 빠졌다.
잡지사 측이 논문 속의 '유교'란 단어를 모두 '유학'으로 바꿀
것을 요구한 것이다. 사회주의 중국 정부는 유학의 종교성을
부인하며 '유교' 대신 '유학' '유가' '공맹지도(孔孟之道)'
같은 단어만 사용하게 했다.
정치적 목적을 위한 공자 사상의 또 다른 변질이다.
▶문화혁명 때 마오쩌둥에 의해 짓밟혔던 유학은 장쩌민이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을 내세우면서 되살아났다.
국영 방송은 위단(于丹)이란 젊은 여교수의 논어 강좌를 비롯해 문학 역사 철학 의학 군사 등 전통문화 강좌를 쏟아냈다.
중국은 또 세계 속에 스스로를 '문명대국'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공자를 활용했다.
2004년부터 지금까지 120개국에 440개의 '공자학원'을 세워 외국인에게 중국어와 다도(茶道)·서예를 가르친다.
▶이 공자학원에 대해 미국 대학교수들이 단단히 화가 났다.
미국 대학교수협회는 그제 "공자학원이 중국 정부의 선전 수단으로 활용되며 학문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며
미국 내 100여개 공자학원 문을 닫으라는 성명을 냈다.
마이애미대학 교수는 "공자학원 수업 때 달라이 라마를 언급해선 안 되고 티베트·대만·공산당 파벌 등도 금기 주제"라고 했다.
중국이 원하는 '소프트파워'는 세계인들이 중국 문화에 매력을 느낄 때 생긴다.
'공자학원'이 멀리서 찾아온 벗들에게 '중국의 가치'를 강요한다는 걸 공자가 안다면 뭐라고 말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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