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活文化/세상이야기

[월드리포트] 中 '늙은 여자는 미니스커트 입지마'

바람아님 2014. 6. 23. 11:22
    중국에서 자주 듣는 말 가운데 "부원밍"이란 게 있습니다. 한자로 쓰면 "不文明". 글자 그대로 풀면 문명스럽지 못하다는 뜻인데 공중도덕에 어긋나는 눈꼴사나운 행동을 탓할 때 자주 쓰는 말입니다. 과거 먹고 살기 힘들 때도 문명 대국이라는 자부심 하나로 버텨왔던 중국인들은 최근 경제대국으로 부상함에 따라 이에 걸맞는 선진적인 질서의식을 갖춰야 될 필요성을 절실히 자각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굵직한 국제 행사를 앞두고는 대대적으로 문명캠페인 운동을 벌이는 게 요즘 중국입니다.

지난 2008년 여름 베이징 올림픽을 즈음해 한바탕 '웃통 벗고 다니지 않기' '머리 감고 다니기' '침 뱉지 않기' 운동이 벌어져 민망한 상의 탈의 차림의 남성들이 공안에 연행되는 일들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캠페인 덕분인지 과거엔 흔히 볼 수 있던 반라의 버스 운전기사들을 이제는 어디서도 찾기 힘들게 됐습니다.

올 가을 APEC 정상회의 개최를 앞두고 베이징 시는 또 한 차례 문명캠페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번 달부터 12월까지 계속될 이번 캠페인에서도 몇 가지 문명인으로서 해서는 안 될 금기 사항을 적시해 시민들에게 주지시키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대중교통 내에서 음식을 먹지 말자' '기차 안에서 신발을 벗거나 발을 상대편 의자에 올리지 말자' '새치기를 하지 말자' 등등.

그런데 금기 사항 중에 눈에 띄는 게 하나 있습니다. '나이 든 여자는 무릎 밑으로 최소 3센티미터 이상 내려오는 치마를 입을 것!' 보기 흉하니 (젊고 늘씬한 아가씨들 말고) 늙은 여자들은 감히 짧은 치마를 입고 나돌아다니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주머니들의 미니스커트 착용은 도시 미관을 해치는 그야말로 '부원밍'한 행동이라는 뜻이죠. 아마도 조만간 베이징에서는 공안들이 줄자 들고 다니며 오가는 아주머니들 붙잡아 세우고 치마 길이 재는 진풍경을 보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치 우리나라 70년대 장발 단속이나 미니스커트 단속 시절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지만 요즘 시대에 우리나라에서 아주머니들 치마 길이 갖고 시비를 건다면 아마 난리가 났을 테지만 이상하게도 중국에서는 언론이고 어디고 별다른 반발이나 논쟁을 제기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여성들의 치마 길이는 입는 사람 스스로의 판단에 맡길 일입니다. 옷의 기능성과 심미성을 고려해 자기 나름의 최적의 선택을 하면 되고, 타인들은 그저 그 선택의 결과를 받아들인 뒤 내심으로 평가하고 필요하다면 그 선택의 이유를 짐작하면 그만인 겁니다. 공개적으로 대놓고 보기 좋다 흉하다를 논할 문제는 아니라는 저죠. 그래서인지 치마 길이에 관한 다양한 경제심리학적인 분석들이 있습니다. 미국의 경제학자 마브리(Mabry)는 1971년 뉴욕의 경제상황과 치마길이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이론을 내놨습니다. "불황일수록 여성의 치마 길이는 짧아진다!" 주머니가 가벼워지는 불황기에는 소비 심리가 위축되다보니 원단이 적게 들어 저렴한 미니스커트가 잘 팔린다는 겁니다. 바꿔 말하면 미니스커트 유행이 끝나면 불황의 끝이 멀지 않았다는 신호라는 얘기입니다. 어려운 때일수록 짧고 도발적인 옷차림으로 여성성을 강조해 남성들로부터 보호받으려는 여성들의 잠재의식이 작동한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이를 이용해 패션업계에서 불황기 타개책으로 미니스커트 유행을 부추긴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정반대의 이론도 있습니다. 1926년 경제학자 조지 테일러는 오히려 경기가 나쁠 때 치마가 길어진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시에 여성들 사이에서 실크스타킹이 유행했는데 경기가 좋을 때는 여성들이 실크스타킹을 보여주려고 치마를 짧게 입지만, 경기가 나쁠 때는 스타킹 살 돈이 부족해 긴 치마를 선호했다는 거죠. 치마 길이와 경기변동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헴라인 지수(Hemline Index)'라고 하는 경제 지표도 있습니다. 헴라인 지수가 높아질수록 치마 길이는 더 짧아집니다.

상반된 두 분석 가운데 어느 쪽이 맞는 지는 모르겠습니다. 하나 분명한 건 치마 길이를 놓고도 이렇게 정반대의 분석이 가능할진데 자기가 입고 나갈 치마 길이 선택의 자유까지 제한받는 사회라면 진정한 '문명' 사회도 아니고, 민주 사회는 더 더욱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자 여러분! 나이 든 중국 여성들의 치마 길이와 중국의 문명 지수는 비례할까요? 아니면 나이 든 중국 여성들의 치마 길이와 중국의 민주화 지수는 반비례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