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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칼럼]'병자호란(丙子胡亂)'을 읽는데 시진핑이 왔다

바람아님 2014. 7. 15. 09:12

(출처-조선일보 2014.07.15 김대중 고문)

시 주석, 胡亂과 6·25 언급 없이 '어느 편에 설지'만 교묘히 물어
日 아베 군국주의 회귀와 맞물려 '앞뒤로 敵'인 한반도 상황에서
전략적으로 미국의 힘 활용하고 영리한 외교적 속내 지켜가야

김대중 고문 사진역사평설 '병자호란(丙子胡亂)'은 참으로 읽어내기 힘든 책이었다. 

우리의 선조가 중국인들에 당한 민족적 수난과 치욕은 적어도 오늘의 한국인으로서는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며 고문이었다. 읽는 도중 여러 번 책을 덮거나 던져버렸을 정도다.

반정(反正)으로 잡은 왕권을 명(明)으로부터 승인받으려는 인조(仁祖)나 거기에 붙어먹는 사대(事大)의

대신들은 그렇다 치고 그들의 개만도 못한 정치 때문에 죽어간 수십만명의 백성은 너무나 비참했다. 

조선을 이리저리 끌고 꿇리며 부려 먹은 그때의 중국인들에게 지금 복수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한국에 왔다. 

시진핑은 임진왜란 때 조선과 '어깨를 나란히 한' 명의 지원을 내세우고 일본의 식민 침략에 대항한 

한·중 공동 투쟁을 자랑스럽게 얘기하면서 한국에 대해 '어느 편'에 설 것인가를 아주 교묘하게 묻고 돌아갔다. 

병자호란 때 저들이 준 고통, 6·25 때 중공군에 목숨을 잃은 수만명의 우리 국민 희생에는 한마디 언급도 없었다. 

그의 방한 이후 한국이 미·중 간 어느 쪽에 서야 하는가를 놓고 새삼 설왕설래가 시작됐다. 

거기에 일본 아베 총리의 '군국주의로의 회귀'라는 행보까지 곁들어 동아시아는 바야흐로 '짝짓기의 시대'로 접어든 느낌이다.

'병자호란'의 저자 한명기 교수는 책의 말미에 이렇게 썼다. 

"조선시대 지식인들은 한반도가 처한 지정학적 상황을 복배수적(腹背受敵)이라고 표현했다. 

'배(腹)와 등(背) 양쪽에서 적(敵)이 몰려오는 형국'이라는 뜻이다. 

정면이나 배후에서 기존 질서의 판이 바뀌는 변화가 일어나면 '끼인 자'의 처지는 심각해진다. 

(중략) 명이 쇠망의 조짐을 드러내고 일본이 굴기하던 16세기 말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임진왜란으로 명이 더 쇠약해지고 누루하치의 만주가 떠오르면서 17세기 초반 병자호란을 겪었다. 

아편전쟁 이후 청이 쇠퇴하고 일본이 다시금 굴기하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이 한반도를 할퀴었다. 

요컨대 주변에서 힘의 전이(power shift)가 벌어지면 한반도는 어김없이 전쟁터가 되었던 것이다."

―저자는 오늘날 한반도 주변에서 다시금 판이 바뀌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 판을 바꾸려는 조짐의 한 자락을 들고 시진핑이 한국을 찾은 것이다. 

한국을 '형제의 나라'처럼 떠올리고 두 나라 사이를 '친척집'으로 부르면서 우리에게 은근히 '선택'을 촉구하는 듯한 언행은 

결코 유쾌하지 않았다. 

판을 바꾸려는 조짐의 다른 한 자락은 일본의 아베 총리가 들고 있다. 그는 중국을 포위하듯 호주와 아시아 여러 나라를 

감싸 돌고 가까이는 북한에 추파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그는 중국 포비아에 빠진 미국을 겨냥해 일본 자위대를 마치 

'미·일 자위대'로 재편(?)하는 양 선전 공세를 펼치고 있다.


그래서 오늘 한국 지식인들은 100년 전 상황의 재현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상황을 100년 전의 그것과 평면적으로 대비할 필요는 없다. 오늘의 한국은 100년 전 조선이 아니다. 

우리는 만족스럽지는 않아도 경제력에서 중·일에 일방적으로 무시당할 위치에 있지 않고, 군사력에서도 미국을 배경으로 

둔 실력은 어느 정도 인정받고 있다. 문화적·정치적으로도 맥없이 당할 처지는 아니다. 

다만 우리는 국력의 정도(程度)를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100년 전과 다른 또 하나의 요소는 미국이라는 존재다. 

일부는 미국을 아시아에서 '지는 해'로 보는 경향이 있고, 또 미국이 계속 한국의 등 뒤에 있어 주리라는 보장도 없다고 말한다.

극단 좌파는 이참에 반미(反美)를 본격화해 미국을 아예 등 돌리게 하려는 기도를 버리지 않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복배(腹背)의 적들'을 견제하는 데 미국만 한 탈출구가 없다는 전략적 사고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국과 일본은 5000년 역사에서 부단히 우리 땅을 유린하고 통째로 집어먹고 멍들게 했다. 미국은 적어도 우리 땅을 빼앗을 

욕심을 보인 적은 없다. 또 우리는 중·일에 갇힌 5000년 동안 늘 가난했고, 먹고살 만큼 된 것은 광복 후 지난 60년의 일이다. 

거기에 미국의 도움이 있었다. 우리 민족은 미국을 매개로 중국과 일본의 울타리를 벗어나 대양(大洋)으로 나왔을 때부터 

비로소 햇볕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그런 차원에서 미국을 선의로 '이용'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중국·일본의 울타리 또는 '굴레' 안에 갇혀 있으면 안 된다. 다만 중요한 전제가 있다. 

중국과 '친척'처럼 지내고 일본과 결코 척지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주변 강대국들이 요구한다고 섣부른 선택을 하는 외교적 객기를 부려서도 안 된다. 

아주 미울 정도로 약게 놀아야 한다.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지금부터 우리 '속'에 깔고 가야 한다.




============ ‘역사평설 병자호란’ 관련 서울신문기사(2013-11-02) =============

[저자와의 차 한잔] ‘역사평설 병자호란’ 펴낸 한명기 명지대 교수

377년전 치욕적인 병자호란…어쩌면, G2 시대 현재진행형


알다시피 병자호란은 1636년 12월 9일 시작해 1637년 1월 30일 종료된 청의 조선 침략 전쟁이다. 

이에 앞서 조선은 1592년 임진왜란, 그리고 1627년 정묘호란을 겪었다. 

그리고 병자호란 때 청의 가공할 전투력을 감당하지 못한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다. 그리고 45일 만에 항복했다. 

삼전도(三田渡)에서 인조는 청 태종에게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 즉 세 번 절하면서 세 번씩 머리를 땅에 조아리는 

치욕적인 행위를 했다. 백성들은 더욱 처참했다. 50만명에 이르는 조선인이 청에 끌려가 노비로 전락했다. 

비싼 속환가로 인해 고국으로 돌아오기도 어려웠지만 돌아온 후에는 ‘화냥년’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손가락질을 

받았다. 그렇게 병자호란은 백성들에게 돌아갈 조국마저 앗아갔다. 

그렇다면 역사 속의 한 과거, 당시와 현재의 상황은 정녕 다른 것일까.




역사학자 한명기씨는 ‘역사평설 병자호란’(푸른역사)을 통해 “병자호란은 과거가 아니다. 

어쩌면 지금도 서서히 진행되고 있는 현재일 수 있으며 결코 오래된 미래가 되지 않도록 우리가 반추해야 할 G2 시대의 

비망록”이라고 강조한다.

“17세기 초반이나 지금의 한반도는 지정학적 조건이 비슷합니다. 

강대국 입김에 의한 ‘끼인자’이거든요. 지금의 전작권 문제, 미국 일본 간의 밀월관계, 중국의 견제 등의 상황이 그러합니다. 

정치적으로 미국을 바라봐야 하고 경제적으로는 중국을 바라봐야 하는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는 격변하는 시대에 살고 있으며 그 격변의 핵심은 중국의 부상이라고 정의한다. 

급속한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정치·군사적으로도 미국에 버금가는 존재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은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미래를 

좌우할 태풍의 눈이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일본은 부산하다. ‘떠오르는 중국의 행보를 예측하지 못하면 일본의 미래는 없다’고 아우성을 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병자호란 무렵처럼 국제질서의 판이 바뀌던 시기, 우리 선조들이 보였던 대응의 실상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시한다. 

강대국들의 파워 게임에 일방적으로 휘둘리지 않기 위해, 나아가 ‘선택의 기로’로 내몰리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성찰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맹자의 구절을 인용한다.


“7년 된 병에 3년 된 쑥을 구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 달 묵은 쑥조차 없어 당장 죽어 가는 환자의 절박한 처지에서 보면 ‘3년 묵은 쑥’을 구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일 수밖에 

없지요. 하지만 지금이라도 쑥을 구해 놔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못 먹더라도 다음 세대는 먹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정치권이나

나라를 이끄는 리더들이 합의점을 도출해 쑥을 구해야 하는 시기인데도 불구하고 정파적 이익만 추구하고 있습니다.”


377년 전 병자호란 당시 추위와 굶주림 속에 절망과 슬픔을 곱씹으며 심양으로 끌려가야 했던 수많은 선인들의 고통을 생각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이 책은 2007년 1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서울신문’에 연재했던 글에 새로 내용을 첨가한 것이다.


김문 선임기자 k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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