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國際·東北亞

[김광인 박사의 북한 뒤집기] 김일성이 승인한 개혁개방, 아들 김정일이 훼방

바람아님 2014. 8. 4. 18:04

(출처-프리미엄조선 2013.11.26 김광인 박사)


김광인 박사

1980년대 말 중국의 융융투(龍永圖) 평양주재 유엔개발계획(UNDP) 부대표가 나진-선봉개발 구상을

들고 김일성을 찾아갔다. 당시 북한은 나진항을 러시아에 임대해 연간 400만 달러 정도의 수입을 

얻고 있었다. 융 부대표는 400만 달러 정도는 푼돈에 불과하다며, 나진-선봉 일대를 경제특구로 

지정해 개발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융 부대표의 얘기를 듣고 난 김일성은 좋은 구상이라며 적극적인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이어 정무원(현 내각) 대외경제위원회 국제기구협조총국의 한태혁 총국장이 북한측 파트너로 

임명되면서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한 총국장은 융 부대표에게 "당(黨)에도 보고가 있어야 한다며 김정일에게도 브리핑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권했다. 융 부대표는 "최고지도자에게 설명했으면 됐지 무슨 보고를 또 하라는 거냐"며 일축했다. 

난감해진 한 총국장은 융 부대표와 주고받았던 얘기를 포함한 전말을 김정일에게 그대로 보고했다. 

얘기를 듣고 김정일이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한마디 했다. “그래? 얼마나 잘되는지 두고 보자….”


북한은 91년 12월 정무원 결정 제74호로 나진-선봉 일대 621㎢를 자유경제무역지대로 하고, 나진항과 인근의 청진항을 

자유무역항으로 지정한다고 발표했다. 나진-선봉 개발구상이 현실화되어 궤도에 오른 것이다. 이어 나진-선봉 개발을 주도할 

당기구로 59호 지휘부도 신설됐다. 59호 지휘부의 책임자 로 김정일의 매제 장성택이 유력한 후보로 물망에 올랐다. 책임자가 

장성택쯤 돼야 힘을 얻기 때문이다.


최종 당 비준 과정에서 김정일이 "꼭 장성택이 할 필요가 있냐"며 슬쩍 비틀었다. 

그 바람에 공은 한성룡 당중앙위 경제담당 비서에게 넘겨졌고, 곡절 끝에 이윤일 부부장으로 최종 낙착됐다. 

일이 이쯤 되고 보면 나진-선봉 개발계획의 어두운 앞날은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상은 나진-선봉 개발 내막을 잘 아는 고위층 출신 탈북인사로부터 들은 얘기다. 비슷한 맥락의 얘기를 생전의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로부터 들은 기억이 난다. 나진-선봉 자유경제무역지대가 공식 출범한 지 2년쯤 지났을 때였다. 한성룡 비서가 

황장엽(국제담당) 비서를 붙들고 하소연을 했다.

"황 비서, 요즘 잠이 안와요." "왜요?" "나진-선봉 개발이 시작된 지 한 이태쯤 지나지 않았소. 그런데 (이렇다 할) 성과가 없어요.

그래서 말인데, 황 비서가 장군님(김정일)께 얘기 좀 잘 해줬으면 좋겠소."


김정일의 기분이 괜찮아 보인 어느 날, 황 비서가 김정일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요즘 한성룡 비서가 고민이 많은가 봅니다." 

"왜요?"  "나진-선봉 개발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는데 좀처럼 성과가 나지 않아서…." 

"그거 진짜로 하라는 건줄 알았어요?" 김정일이 입가에 야릇한 웃음을 지으며 한마디 던지고 지나갔다.

황 前비서는 "김정일이 중앙당 경제담당 비서까지 속였다"며 혀를 찼다.


1998년 김정일이 나진-선봉을 찾았다. 일대를 휘익 들러본 김정일은 곳곳에 붙어 있는 상품 광고판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당 구호는 어디가고, 온통 외국상품 광고뿐인가…." 다음날 외국상품 광고는 모두 사라지고 당 구호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자유경제무역지대의 '자유'도 날아가고 '경제무역지대'만 남았다. 그동안 상품광고 덕에 먹고살던 나진-선봉시 인민위원회

(市정부)도 졸지에 오리알 신세로 전락했다.


북한당국이 최근 전역에 14개 경제개발구를 지정하는 '야심찬' 경제개발 계획을 발표해 북한 개방문제가 새삼 세간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이번엔 과연 제대로 개방하는 걸까? 이런 물음 자체가 난센스에 가까운 우문(愚問)일지도 모르겠다.


무슨 일이든 성사되기 위해서는 행위주체의 주관적 의지와 객관적 환경·조건이 맞아떨어져야 한다. 

마치 씨줄과 날줄이 만나 천이 짜지듯 말이다.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으면 일이 이뤄지기 어렵다.


나진-선봉 개발계획이 나왔을 때 북한당국의 개방의지를 의심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김정일은 자신에게 사전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 사업을 방관하다시피 했다. 

아니 '방해'했다고 하는 표현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북한경제가 빈사상태에 빠진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