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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히스토리아 [216] 부부간 사랑의 방법

바람아님 2014. 8. 13. 19:35

(출처-조선일보 2013.05.23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부부간 사랑은 어떠해야 할까? 
기독교 윤리가 지배하던 서양에서는 기본적으로 남녀 간 사랑에 대해 불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나마 애정에 의한 사랑은 낫지만 육욕(肉慾)에 따른 사랑은 사악한 것으로 여겼다. 그것은 흔히 부모 
동의 없는 젊은이들 간의 결혼, 말하자면 야합(野合·들판에서 결합하기)이 되기 십상이다.

육욕까지는 아니라도 그와 통하는 것이 용모에 반해 결혼하는 행위이니, 이는 일종의 광기로 보았다. 
남녀의 좋은 용모는 흔히 사람들 마음에 불을 지펴 욕구를 충족시킬 방도를 찾도록 만드는데, 이것은 
인간을 결혼으로 이끄는 여러 동기 가운데 '가장 명예롭지 못한 것(minus honnestis, least honorable)'이다. 중세 신학자 페테르 롱바르가 정리한 이 견해는 오래도록 영향을 미쳤다.

부부 사이에도 마찬가지다. 부부간에 지나치게 사랑하는 것은 온당치 못한 일이다. 
현명한 사람은 부인을 이성(理性)으로 사랑해야지 열정으로 사랑해서는 안 된다. 
성 제롬이나 섹스투스 엠피리쿠스의 견해에 따르면 아내를 음탕하게 사랑하는 것은 일종의 간통이며, 몽테뉴에 따르면 근친상간이다!

11세기 독일의 교회법 학자인 부르하르트는 '법령집'에서 이렇게 다그친다. 
"그대는 주일에 아내와 결합하지 않았는가. 만약 그랬다면 그대는 나흘 동안 빵과 물만 먹는 고행을 해야 한다. 
그대는 사순절 기간에 아내와 음란한 행위를 하지 않았는가. 만약 그랬다면 그대는 40일 동안 빵과 물만 먹는 고행을 해야 한다.
그대가 취해 있을 때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그대는 20일 동안 빵과 물만 먹는 고행을 해야 한다. 
크리스마스 전 20일 동안, 매주 일요일, 법에 따라 정해진 모든 재일(齋日), 12사도의 탄생기념일, 주요 제례일, 
그리고 공공장소에서는 순결을 지켜야 한다. 만약 그대가 이런 날이나 장소에서 순결을 지키지 않았다면, 
40일 동안 빵과 물만 먹는 고행을 해야 한다."

서양에서는 19세기에 가서야 이런 금기로부터 사랑이 '해방'되었다. 
해방되었다고 무식하게 힘으로 밀어붙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요즘에는 부부간 강간죄도 마련되어 있다. 
힘보다는 부드럽게 성의를 다하는 게 중요하다. 그렇지 않을 경우 실정법 위반이 아니라 해도 자칫 오랜 기간 빵과 물만 
얻어먹으며 살아야 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