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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히스토리아 [217] 쓰지 마사노부

바람아님 2014. 8. 22. 08:39

(출처-조선일보 2013.05.30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일제 전범 중에서도 쓰지 마사노부(�政信)는 가장 사악한 사례에 속한다. 그는 참모 장교로 
파견되었던 버마(미얀마)·필리핀·말레이시아 등지에서 소름끼치는 잔혹 행위들을 자행했다.

그의 부대가 싱가포르를 점령했을 때 그는 반일(反日) 성향의 화교들을 제거하는 소위 숙청(肅淸) 
작전을 수행했다. 18세 이상 50세 이하의 모든 중국인 남자를 정해진 장소에 집합시키고는 한 사람씩 
밀고자들 앞을 지나가게 했다. 머리에 두건을 쓴 밀고자들의 고갯짓에 따라 따로 분리된 사람들에게는 
삼각형 스탬프, 무사 통과한 사람들에게는 사각형 스탬프를 맨살에 찍었다. 삼각형 스탬프가 찍힌 
사람 7만 명이 고문당하고 살해됐다. 목이 베인 사람도 있고, 집단으로 묶인 채 바닷물에 던져져 
익사한 사람도 있다. 빨리 익사하지 않으면 기관총으로 끝장을 보았다.

이런 만행은 말레이반도에서도 반복되었다. 중국인과 말레이인들을 끌고 가 논바닥에 무릎을 꿇려 
뒤에서 총검으로 찌르거나 칼로 목을 베어 살해한 후 일부러 식수를 오염시키기 위해 시체들을 
우물 속에 던져 넣었다. 어린 학생들이 비명을 지르며 떼 지어 도망가면 일본군이 뒤쫓아 가 잔인하게 난도질을 했다. 
한 달 동안 4만여명이 학살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잔인함을 잘 보여주는 일화는 1944년 버마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가 연합군의 포로가 된 혼다 마사키 장군을 구출하였는데,
이를 축하하기 위해 일본군 장교들이 축하연을 벌였다. 이때 나온 요리는 생포한 미군 비행기 조종사의 간이었다.

그는 마땅히 전범으로 기소되었어야 한다. 그러나 일이 이상하게 돌아갔다. 종전 후 연합군이 그를 체포했지만 그는 탈출에 
성공하여 정글 깊숙이 숨었고, 불교 승려로 가장하여 몇 달을 지냈다. 어찌 된 일인지 자신이 전범으로 기소되지 않자 장제스 
총통을 만나 그의 보호를 받다가 귀빈석에 앉아 일본으로 귀국했다. 이미 일본 정계의 지도층 인사가 된 옛 동료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고 결국 중의원이 되었다. 그는 1961년 하노이를 방문했다가 그 이후 실종되었는데,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망언을 일삼는 일본 국회의원들과 제국주의의 식인귀(食人鬼)가 겹쳐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