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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저절로 움직이는 바위의 비밀 밝혀져

바람아님 2014. 8. 28. 13:59
미국 캘리포니아 데스 밸리(Death Valley)에는 아주 평탄한 마른 호수, '레이스트랙 플라야(Racetrack Playa)'가 있습니다. '저절로 움직이는' 바위들이 있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인적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사막 한 복판에서 바위를 마치 누가 잡아서 끌어당긴 것처럼 길고 선명하게 움직인 자국이 나 있기 때문입니다.

딱딱하게 굳은 땅 위로 바위가 움직인 자국은 긴 직선일 때도 있고, 때로는 둥글게 곡선을 그리기도 합니다. 이 모습이 마치 경주 시합을 하는 것 같다고 해서 '레이스트랙 저지대'란 이름이 붙었습니다. 하지만 도대체 어떤 이유로, 무엇이 이 바위를 움직이게 하는지는 오랫동안 미스터리로 남아있었습니다.

그런데 캘리포니아 스크립스 해양연구소의 리처드 노리스 박사팀이 끈질긴 관찰 끝에 그 비밀을 알아냈습니다. 지난 2011년부터 이들은 기상관측장비와 카메라를 갖다놓고 GPS를 이용해 바위의 움직임을 오랫동안 인내심을 갖고 측정해 왔는데, 그 결과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 겁니다.

레이스트랙 플라야는 1130미터 고지대에 위치해 종종 얼음이 얼고 눈이 내릴 때가 있습니다. 어떤 때엔 이 딱딱한 표면 위에 고인 물이 얼어붙는데, 때로 이 얼음은 강한 바람 때문에 여러 조각으로 깨지기도 합니다. 연구팀은 이 미끄러운 얼음 조각 위로 바위가 미끄러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실제 그 증거를 찾기로 했습니다.

연구팀은 지난해 12월 얼어붙은 이 사막 호수에 캠프를 차리고 하염없이 기다렸습니다. 바위가 움직이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추위도 참아가며 인내심을 발휘했지요. 그러던 어느 날, 발견했습니다. 깨진 얼음조각이 바위 옆을 지나치면서 아주 살짝 이 바위를 움직이는 것을 포착한 겁니다. 아주 느린 움직임이어서 눈으로 구별하기가 어려울 정도였지만, GPS 상으로 분명히 바위의 위치가 달라졌습니다.

시간이 지나 낮이 되면서 기온이 올라가자 얼어붙은 얼음이 녹았습니다. 그러자 새로 생긴 '경주 시합 자국'이 곳곳에서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60곳도 더 되는 자국이 발견된 겁니다.

☞ 움직이는 바위 동영상 보러가기 (클릭)

가만 보니 이 바위들은 계속 움직이는 게 아니라, 바람과 얼음의 힘이 바위를 움직일 만큼 충분히 강해졌을 때만 아주 조금씩, 조금씩 움직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참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충격을 받아 한 발짝씩 움직이는 식입니다. 그리고 이런 움직임이 반복되며 오랜 세월이 흘러 마침내 긴 자국을 이룬 것입니다.

연구팀도 이런 발견이 무슨 과학계에 한 획을 긋는 대단한 업적이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답니다. 하지만 이런 약하고 느린 얼음의 힘도 의외로 큰일을 해낼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예를 들어 지난 1952년 미국 네바다의 한 호수에서는 얼음 때문에 땅에 박힌 전화선 지지봉이 밀려 뽑혀나가 미국 동서를 연결하는 장거리 전화가 마비되기도 했다면서, 오랜 시간에 걸쳐 커다란 바위를 움직인 것이 결국 약한 얼음의 힘이라는 겁니다.

이런 연구결과를 보면 문득 미국의 과학계가 부러워지곤 합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돈 한 푼 안 나오는 이런 한가해 보이는 연구를 위해 몇날 며칠 추운 사막에서 캠프 치고 앉아 돌덩이 움직이는 거나 보겠다고 한다면, 정신 나간 사람이란 소리 듣기가 십상이니 말입니다.

어제 학술지 '플로스 원(PLoS onE)'에 실린 이 연구가 소개되자 벌써 '나도 가서 기다려보겠다'는 사람들의 반응이 나오고 있습니다. 여러모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