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活文化/세상이야기

[사람 속으로] '마음의 병'에 시달리는 엘리트들

바람아님 2014. 8. 30. 11:22

골프 황제도 월가 저승사자도 성충동 조절 장애 시달려
억눌린 무의식 폭발하며 극단적 퇴행 '완벽주의자 함정'













망가지는 엘리트 그들을 괴롭히는 마음의 병 어디서

내 속엔 내가 너무 많다. 남들이 아는 내 모습이 때론 너무 낯설다. 그들에게 난 출세한 명망가이자 존경받는 엘리트다.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그 길을 달려왔다. 하지만 어둑한 밤 골목길, 홀로 있는 방 한구석에서 남들이 모르는 나를 만나곤 한다. 그때의 나는 외롭고 우울하고 불안하다. 참을 수 없는 욕망과 용납되지 않는 충동이 나를 괴롭힌다. ‘마음의 병’, 어디에서 오고 탈출구는 없을까.


학창 시절엔 열심히 공부해서 또래 친구들보다 좋은 성적을 올렸다. 명문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남들이 알아주는 번듯한 직장도 잡았다.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 어울릴 만한 좋은 집안의 규수와 결혼에도 성공했다. 회사에 들어와선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할 일을 우선했고, 덕분에 높은 위치에 올랐다.

 그런데도 마음은 허전하고 나보다 더 잘나가는 사람들에 비해 스스로가 부족하게만 느껴진다.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는 불안감은 잠시도 그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극도의 경쟁사회인 한국의 오늘을 살아가는 상당수 엘리트 계층이 느끼는 감정은 여기서 많이 다르지 않다.

 강동우 성의학클리닉 원장은 “사회 엘리트 인사들 중엔 책 공부는 열심히 했을지 몰라도 일대일 대인관계에 취약한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대인관계 가운데 가장 깊은 관계가 성관계다. 이는 사랑을 나누는 이성과의 사이에서 이뤄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젊은 시절 공부하고 일하느라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못해 본 이들 중엔 아내와의 관계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강 원장은 “어쩌면 최근 일련의 법조계 성추문의 당사자들도 아내와의 친밀관계에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상대방으로부터 존재를 인정받고 친밀감을 형성해 그에 따른 사랑의 감정과 쾌락을 느끼는 게 정상적인 성(性)이다. 하지만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은 일면식도 없는 젊은 여성들을 따라다니며 자신의 성충동을 표현했다. 강 원장은 김 전 지검장의 음란행위가 성충동조절장애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그는 “성충동조절장애는 머리가 나쁘거나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며 “고도의 목표의식을 가진 사람이 그 목표를 이루고 나서 공허감을 느끼면 극단적인 퇴행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가장 본능적인 욕구인 성충동을 비뚤어진 방식으로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섹스 중독으로 물의를 빚은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 역시 불안과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섹스에 강박적으로 매달린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뉴욕주 검찰총장 출신으로 ‘월스트리트의 보안관’ ‘저승사자’로 불리던 엘리엇 스피처는 2008년 고급 매매춘 조직의 단골 고객으로 밝혀지며 사임했다.

유범희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은 최근 김 전 지검장을 불안하게 만든 스트레스 요인이 있었을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과거에도 그런 일이 있었는지를 확인해 봐야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번에는 지금까지 잘 억제해 오던 충동을 통제할 수 없는 상태였을 것”이라며 “자신이 느끼는 스트레스 요인을 해결하기 위해 성적 충동이 더 거세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또 김 전 지검장이 평소 술을 안 마셨다는 점을 들어 “지금까지 술을 안 마심으로써 자기의 충동을 억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변태적인 성충동이 드러나지 않았을 수 있다. 그런데 이번처럼 억제를 못하게 된 상황이 된 건 스트레스가 급격히 늘어났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스트레스 공화국이라고 불리는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대부분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나름의 스트레스를 안고 살아간다. 게다가 정보기술(IT)의 발전은 삶의 속도를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만들었다. 특히 사회지도층 인사들은 이해관계가 얽힌 복잡한 사회관계망 속에서 일반인들보다 더 큰 스트레스를 느끼게 마련이다. 본심을 털어놓고 푸념할 수 있는 동료나 친구가 없을 경우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으로 발전할 수 있다.

 “더불어 사는 지혜를 구하지 못하고 주위 사람과의 차이를 받아들이는 데 인색했다. 세상살이가 ‘열려라 참깨’식의 주문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나는 단박에 모든 것을 해결하려 욕심을 부렸다. 마음은 꼬여만 갔고 마음의 장벽은 켜켜이 쌓여갔다.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느낌이나 감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이 어느 순간 분출됐을 때 나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고 말았다. 그것은 욕망과 현실의 괴리였는지 모른다.”

 신체형 장애를 앓았던 한 중년 남성의 고백(『마음의 발견』 중에서)이다. 정신의 문제가 신체적 질병으로 나타나는 게 신체형 장애다. 그는 호흡곤란, 지방종, 목디스크, 십이지장궤양 같은 다양한 질병에 시달리면서도 자신이 왜 아픈지 몰랐다. 우연히 찾은 신경정신과에서 신체형 장애 진단을 받고 6개월간의 심리상담 등을 통해 증상을 호전시켰다. 이와 관련, 그는 “내가 좀 더 일찍 내 마음에 관심을 갖고 들여다봤으면 여러 질병으로 인한 고통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때 심각한 우울증세도 겪었다. 아침에 눈을 뜬 뒤 잠자리에 들기까지 땅 속을 기어다니는 듯한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살았다. 잠도 쉽게 들지 못하고 불면의 밤을 지내야 했다. 만사가 귀찮았고, 외출마저 꺼렸다. 죽음보다 가혹한 이 형벌을 피하기 위한 유일한 길은 목숨을 끊는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10명 중 1명은 평생 한 번쯤 겪는다는 정신질환이 바로 우울증·불안증이다. 우울증은 착실한 사람에게 많이 찾아온다. 뭐든 철저하게 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성격, 정직하고 꼼꼼하며 책임감이 많은 이들은 일단 일에 손을 대면 적당히 쉬거나 타협을 하지 못한다. 일에 열중해 심신의 피로가 쌓이면 휴식이나 기분전환을 해야 하지만 그게 안 되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과로로 인해 건강이 약화돼 일의 능률이 떨어지는데 그래도 쉬기는커녕 거꾸로 자신을 채찍질해 더욱 잘하려 노력하고, 결국엔 과로의 절정에서 갑자기 우울 상태에 빠진다. 신정길 남서울대 교수는 “취미가 없는 사람들이 쉽게 우울증에 많이 빠지는데 이들은 쉬는 날에도 한가로이 있을 수 없고 언제나 일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며 “우울 상태가 되면 자신을 무가치한 사람으로 느끼거나 과거의 하찮은 실패를 과도하게 괴로워하는 등 부적절한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고 말했다. 하지현 건국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울함을 ‘내면을 향해 총구를 돌린 공격성’으로 지칭했다. 화가 나는 상황을 당했을 때 모든 것을 ‘내 탓이오’라며 자책하고 모든 일이 자신으로 인해 벌어졌다며 스스로에게 공격성을 분출하는 것이다. 그는 “어떤 것을 하고 싶다는 목표가 있는데 그것이 자신과 너무 동떨어져 있어 도저히 달성할 수 없을 것 같은 현실에 직면하면 우울감이 커진다”며 “남과 비교하는 건 자신의 정신세계를 우울하고 위축시킬 뿐이므로 무엇보다 나는 소중하다는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일명 A타입이라 불리는 ‘능력자’들 중엔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갑자기 밀려오는 허무감과 무의미함에 갑자기 모든 일에서 손을 떼 버리는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 A타입이란 과도하게 경쟁적이고 시간에 대한 강박을 심하게 느끼는 스타일의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A타입 사람들은 되도록 많을 일을 끝까지 해내고 싶어한다. 무리한 계획을 세워 엄격하게 지켜내고 아무리 어려운 일도 척척 해낸다. 쓸모없다고 생각되는 일은 하지 않고 눈앞에 닥친 급한 일에 집중해 서둘러 끝낸다. 권준수 서울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경쟁을 뚫고 사회지도층의 지위에 오른 사람들 중에는 A타입이 많다”며 “어느 날 갑자기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방황하지 않으려면 외부에서 주어진 목표에만 매진하기보다 진정으로 자신의 무의식이 원하는 일이 뭔지 곰곰이 생각해 보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사람들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는 스타들 역시 다양한 정신질환을 앓는다. 날씬해야 한다는 사회통념 때문에 음식을 거부하는 정신질환을 얻거나 건강을 해치기도 한다.

 가수 아이유는 최근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자신이 폭식증을 앓았다고 고백해 화제가 됐다. 그는 “난 항상 불안함을 느끼고 무기력했다. 마음이 공허한 건데 음식물을 통해 속을 채우려 했다. 토할 정도로 먹어 치료도 받았다”고 말했다. 또 “폭식증이 다 낫지 않아 요즘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먹어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요즘엔 운동중독 수준”이라고 했다. 폭식증은 음식에 대한 자제력을 잃고 짧은 시간(2시간) 안에 지나치게 많은 양의 음식을 섭취하는 정신질환이다. 폭식 후엔 다시 토하거나 설사약을 써서 섭취한 음식을 제거하는 일을 반복한다. 거식증은 식사를 거부하는 장애다. 얼마 전 브라질의 모델 카롤리나 헤스통은 지나친 다이어트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피골이 상접한 그는 사망 당시 키 1m70㎝에 38㎏이었다. 전문가들은 거식증이나 폭식증에 걸리는 사람들은 대체로 머리가 좋고 자신을 완벽하게 통제하려는 완벽주의적 성향이 강하다고 말한다. 거식증의 경우 10명 중 1명이 사망에 이른다. 하 교수는 “다이어트는 과소비와 영양 과잉이 가져온 현대사회의 문화적 증상”이라며 “다이어트가 거식증으로 발전해 스스로를 파괴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가수 김장훈은 오랫동안 공황장애를 앓아왔다고 고백했고, 방송인 허수경은 결박공포증 때문에 좁은 아파트에서는 살 수 없어 제주도행을 택했다고 밝혔다. 관객들에게 항상 웃음과 감동을 주던 배우 로빈 윌리엄스가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다 자살을 택한 최근의 사건은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줬다. 미국 영화배우 데미 무어의 딸 탈룰라 윌리스는 ‘신체변형장애’을 앓고 있다. 신체변형장애란 자신의 외모가 기형이거나 장애가 있다고 뇌에서 신호를 내리는 정신질환이다.

 하지만 정신질환을 창조적으로 승화시켜 위대한 작품을 남긴 예술가들도 많다. 버지니아 울프, 로맹 가리, 실비아 플라스, 어니스트 헤밍웨이 등의 작가들은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구사마 야요이는 공황장애로 평생을 투병하면서 정신질환을 예술로 승화시킨 현대미술의 살아 있는 거장으로 평가받는다.

박혜민·박현영 기자 [중앙일보 2014. 8. 30일자]



[S BOX] 미친 사람 ‘루나틱’ 어원은 달 …‘히스테리’는 자궁

미친 사람을 지칭하는 영어 단어는 ‘루나틱(lunatic)’이다. 루나(luna)는 라틴어로 달을 의미한다. 옛날 서양에서는 달과 광기를 연관시켰다. 보름달이 뇌를 비정상적으로 만들어 사람을 미치게 하거나 간질 발작을 일으킨다고 생각했다.

 신경증을 뜻하는 히스테리는 17세기까지 여자들만 걸리는 병으로 알려져 있었다. 히스테리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 ‘자궁(Hystera)’이다. 여성의 자궁이 몸속에서 돌아다니면서 생리통이나 발작, 신경마비 등의 증세를 가져온다고 믿었다.

하지만 해부학의 발달로 자궁이 몸속에서 움직일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후부터는 머리나 가슴을 히스테리의 원인으로 여기게 됐다. 그에 따라 전에 없던 남성 히스테리 환자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주로는 집에서 공부만 하는 남성 학자들에게 발생하는 병으로 봤다. 지나친 공부로 인한 검은 담즙 과잉이 남성 히스테리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 담즙이 정신을 혼미하고 우울하게 만들고, 나아가 미치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현재와 같은 정신분석의 기초를 닦은 것은 프로이트다. 그는 인간 내면에 무의식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본능과 욕구를 담당하는 이드(id), 양심과 도덕을 담당하는 초자아(superego), 이 둘 사이를 중재하는 자아(ego)가 있다고 규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