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일사일언] 계절 냄새를 맡으며 걷다

바람아님 2014. 11. 3. 10:35

(출처-조선일보 2014.11.03 배미향 CBS FM '배미향의 저녁스케치' DJ)


배미향 CBS FM '배미향의 저녁스케치' DJ나는 계절을 후각으로 음미한다. 
방송이 끝나는 오후 8시부터 나는 매일 한 시간씩 걷는다. 
흩어져 내린 낙엽을 밟으며 묘하게 마음을 흔드는 가을 냄새를 맡으며. 
며칠 뒤 비가 내리고 나면 냉정한 겨울의 싸한 냄새를 맡을 것이고, 
추운 겨울을 지내고 나면 풋풋한 봄 냄새를 맡게 될 것이다. 
그리고 흐르는 땀과 함께 후끈한 여름 냄새를 맡으며 걷는 일은 이 세상 
그 무엇보다 나를 행복하게 한다.

원래 운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일찍이 운전면허를 딴 뒤부터 차를 몰고 다니는 게 습관이 돼서인지 걷는 게 싫었다. 
주변에선 나이가 들어갈수록 운동을 해야 한다고 야단이었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답답한 적이 있었다. 무작정 집을 나서 걷기 시작했다. 
안 걷다가 걸으니 며칠을 고생했지만 이상하게도 걸으면서 맡았던 그 계절의 냄새가 참 좋았다. 
그렇게 한 시간이 두 시간이 되고 세 시간 거리 둘레길도 걷게 됐다. 
한번은 동료들과 북한산 종주도 했고, 강원도 아침가리 트레킹에도 합류했다. 
고생도 했지만 걸으며 느끼는 희열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북한산 종주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걸으면서 내면을 돌아보는 시간도 생기고 건강도 훨씬 좋아지는 느낌이다. 
컨디션이 안 좋다 싶으면 이젠 약을 찾는 대신 계절 냄새를 맡으러 나간다. 
걸으며 음악도 듣고 하루 동안의 나를 돌아보며 걷는 시간. 몸과 마음이 정갈해지는 그 느낌. 
참으로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매력이다. 
가을은 그 점에서 가장 걷기 좋은 황금의 계절이다. 
오늘도 방송이 끝나면 나는 어김없이 계절이 주는 그 냄새를 맡으러 걸어 나갈 것이다.


[일사일언] 계절 냄새를 맡으며 걷다
이번 달 일사일언은 배미향씨를 비롯해 김재원 KBS 아나운서, 김행 한국양성교육평등진흥원장,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육경희 희스토리푸드 대표가 번갈아 집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