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일사일언] '구삼구'씨께 온 사연입니다

바람아님 2014. 11. 10. 08:40

(출처-조선일보 2014.11.10 배미향 CBS FM '배미향의 저녁스케치' DJ)


배미향 CBS FM '배미향의 저녁스케치' DJ내가 라디오 '배미향의 저녁스케치'를 진행하게 된 건 우연이었다. 
14년 전 방송사가 파업을 했는데, 라디오 진행 경력이 있는 사람을 찾는 과정에서 
얼떨결에 자리를 얻게 됐다. 
PD가 최초로 진행까지 맡게 된 것인데, 당시 청취자들 중엔 '진행자가 누구냐' '이름이 뭐냐' 궁금해 
하는 분들이 꽤 있었다. 워낙 경황없이 맡은 프로인지라 원래 DJ가 복귀하면 물러나야 하겠기에 
나를 드러내는 게 아니다 싶었다. 그래서 한동안 내 이름은 말하지 않고 '저녁스케치 939'라고 
프로그램 이름만 알리며 진행했다. '939'는 라디오 주파수 93.9MHz를 의미했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사연 중에 '구삼구(939)'씨에게 보내는 사연이 올라왔다. 
보통 DJ 이름이 뒤에 붙는 라디오 프로그램 특성상, 내 이름을 구삼구씨로 오해한 것이다. 
그 뒤로 나는 한동안 얼굴 없는 구삼구로 살았다. 
이후 파업이 끝나고도 본의 아니게 계속 프로그램을 맡게 됐는데, 
이때부터 용기를 내어 내 이름을 프로그램에 넣었다.

[일사일언] '구삼구'씨께 온 사연입니다그런데 또 언제부턴가 '데미안'씨에게 보내는 
사연이 들어온다. 이 사람은 또 누구인가 
했더니, 내 이름을 얼핏 들으면 데미안처럼 
들린단다. "발음이 정확지 않아서인가?" 싶어 
일부러 이름을 읽을 때 또박또박 발음했지만 
수신자 데미안씨에게 오는 사연은 계속 이어졌다.
그래, 이름이 어떻게 불리는 게 무슨 상관인가? 
매일 오후 6시만 되면 수많은 채널 중에 나를 
찾아 귀를 열어주는 청취자가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방송 덕분에 마음이 차분해져 
교통사고가 줄었다는 청취자 사연도 들어온다. 
오늘도 힘든 하루를 건너온 이들에게 목소리로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미향(美香·아름다운 향기)'이
될 것을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