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4.11.11 김행·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원장)
새벽녘 어디서 '쿠당탕탕'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뛰어가 보니 남편이 냉장고에 우유를 잔뜩 엎질렀다.
2.3L 우유통 절반을 쏟았으니 냉장고는 물론 반찬통마다 우유를 뒤집어쓰고 허여멀겋게 앉아 있다.
그 비싼 키친타월을 아낌없이 풀어 칸칸이 흐르는 우유를 긴급처리하는 꼴이란!
'저 웬수' 소리가 나오려는 걸 누르고, "우유가 더러운 것 닦는 데 최고래.
떡 본 김에 굿한다고 냉장고 청소해야겠다.
마침 유통기한도 다 됐고." 물론 냉장고 청소한 지 일주일도 안 됐다.
플라스틱 통에 찍힌 유통일자는 11월 15일 11시 14분까지였다.
도리 없이 냉장고 칸막이를 모두 꺼내고 행주를 수십 번 빨아가며 청소했다.
옆에 서 있기 미안했던지 남편이 한마디 툭 던진다.
"신(神)이 우유를 쏟은 게 바로 밀키웨이(Milky Way)야. 은하수."
"어쩜 그런 시적인 문구를 생각했어? 아침부터 은하수를 보여줘서 고마워."
그야말로 '오 마이 갓'이다. 샤워도 못 한 채 얼굴에 물칠만 하고 출근하는데 요즘 말로 '완전 대박찝찝'이다.
어리바리 푼수 아줌마라 참은 게 아니다.
만나는 남자마다 가사분담 요령을 물으니
"무조건 칭찬이 최고"라며 '남편 사용법'을 알려줘서다.
'고래도 칭찬하면 춤을 춘다'는 생각에 시험 가동 중이다.
그러다 갑자기 경기도 파주 헤이리 출판단지에서
'피노키오 박물관'을 운영하는 열림원 출판사 정중모 사장이
생각났다.
"피노키오는 남에게 거짓말을 하면 코가 커지고
자신에게 하면 다리가 줄어든다"며
"코가 커지는 이유는 한번 거짓말을 하면 연속 거짓말로
자라 결국 남을 찌르게 되고,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면 자존감을 잃고 위축되어 다리가
줄어든다는 은유"라는 설명이다.
"이러다 피노키오 되는 거 아냐?"
"이러다 피노키오 되는 거 아냐?"
아침부터 분기탱천하니 오만 생각이 다 난다.
그날 저녁 퇴근하니 우리 남편 우유도 사다 놓고 빨래도
널어놨다. 웬일이니? 효과 만방이다.
그래서 피노키오 코스프레 중!
남편이 이 속셈, 알랑가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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