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4.11.13 김재원·KBS 아나운서)
지난 주말 부산에서 특집 방송이 잡혀 기차 여행 할 기회가 생겼다.
일행과 일정이 달라 혼자 하는 여행이니만큼 책 두 권을 챙겨 기차에 올랐다.
인생에서 이웃이 중요하듯 기차 여행도 주변 승객이 중요하다.
옆자리는 차분한 여행객이었으나 앞자리가 문제였다.
20대 아가씨 넷이 큼지막한 여행 가방을 들고 와 자리를 잡았다.
그들은 내내 수다를 떨었다. 본의 아니게 그들의 직장 상사와 남자 친구까지 속속들이 알게 됐다.
심지어 셀카봉으로 사진을 찍어대는 통에 얼떨결에 그들의 기념사진에까지 출연했다.
이렇게 나의 책 읽을 권리는 엄청난 침해를 받았다.
방송을 마치고 오랜만에 부산 친구와 저녁 식사를 한 뒤 밤 기차에 올라탔다.
이번에는 친구 딸 결혼식에 참석하고 돌아가는 50대 주부 셋이 뒷자리를 차지했다.
역시 그들의 딸 혼사 문제와 시댁 식구들 뒷얘기까지
드라마 보듯 훤히 알게 됐다.
독서권은 물론 잠잘 권리까지 박탈당했다.
그래도 조용히 말하는 그들에게 한마디라도 하게 되면
난 즉시 이상한 사람이 된다. 그냥 참을 수밖에.
그들에게는 여행 내내 친구들과 대화할 권리가 있다.
나의 책 읽을 권리와는 충돌한다.
한쪽의 권리는 한쪽이 양보해야만 지켜진다.
비좁은 기차 안에서도 두 권리가 충돌하는데
이 넓은 세상에서는 오죽 많은 권리가 충돌할까?
담배 피울 권리와 깨끗한 공기를 마실 권리,
한 시간 더 자고 싶은 아이들의 권리와 아이들을
일찍 학교에 보내고 싶은 맞벌이 부부의 권리.
무상 급식 권리와 무상 보육 권리도 충돌한다.
결국 한쪽이 양보하거나 피해를 보지 않으면 절대 충족되지
않을 수많은 권리가 누군가의 양보와 결단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위로가 되는 건 그 누구도 평생 희생하지만은 않
것이란 사실이다.
'時事論壇 > 橫設竪設'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분수대] 인생을 편집할 수 있다면 (0) | 2014.11.14 |
---|---|
[횡설수설/정성희]‘늙은 말도 홍당무를 좋아한다’ (0) | 2014.11.13 |
[길섶에서] 청진동 해장국/서동철 논설위원 (0) | 2014.11.12 |
[일사일언] 피노키오 '코스프레' (0) | 2014.11.11 |
[만물상] '대당(大唐) 공정' (0) | 2014.1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