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아트칼럼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134] 함께하는 이들에 대한 믿음

바람아님 2014. 11. 22. 10:33

(출처-조선일보 2014.11.22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프랑시스 알리스, '믿음이 산을 옮길 때', 2002년 4월 11일, 페루 리마.프랑시스 알리스, '믿음이 산을 옮길 때', 2002년 4월 11일, 페루 리마.

프랑시스 알리스(55)는 벨기에 출신으로 남미에서 주로 활동하는 행위예술가다. 
그는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벗어나 일상적 거리에서 단순한 퍼포먼스를 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작업이 2002년 페루 리마의 외곽 지역에서 벌인 
집단 퍼포먼스, '믿음이 산을 옮길 때'다.

알리스는 리마의 대학가를 돌며 자원봉사자 500명을 모집하고, 그들을 작은 동산만 한 
모래언덕 아래로 불러 모아 삽을 한 자루씩 나눠 줬다. 그들의 임무는 한 줄로 나란히 서서 
언덕 기슭에서부터 삽질을 하면서 한 발자국씩 정상을 향해 모래를 퍼 올리는 일이었다. 
그렇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500m 길이로 늘어선 젊은이 500명이 땀 흘려 일한 결과 
모래언덕이 한 뼘만큼 뒤로 물러났다. 
결국 바람 한번 불고 나면 되돌아갈, 하나 마나 한 일을 피땀 흘려 이룬 격인데, 
우리말로 '삽질'이 쓸데없는 일에 헛수고한다는 뜻인 줄을 알리스가 아는지는 모르겠다.

이쯤 되면 '우공이산(愚公移山)'의 고사가 떠오를 것이다. 
우공이 후손을 위해 산을 옮기고자 결심하자, 
그 정성에 놀란 신(神)이 밤새 산을 옮겨주었다지 않는가. 
그러나 리마의 판자촌이 내려다뵈는 황량한 모래산을 한 뼘이나마 움직인 것은 신의 기적이 아니라 함께하기로 
약속한 사람들의 '삽질'이었다. 대부분 대학생이었던 자원봉사자들은 이토록 바보스러운 일을 끝마친 후, 
서로를 믿는다면 변화를 이룰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 들떠 있었다. 
알리스의 작품은 10㎝ 뒤로 물러난 모래산이 아니라, 바로 그 함께하는 사람들에 대한 희망과 믿음이었던 것이다.



프랑시스 알리스, '믿음이 산을 옮길 때'의 다른 이미지

(When Faith Moves Mountains- Francis Aly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