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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나의 서양미술산책] [38] 벨리니와 청화백자

바람아님 2014. 11. 20. 11:15

(출처-조선일보 2010.01.19 김영나 서울대교수·서양미술사)


동서의 교류는 오래전부터 다양한 통로로 이루어졌다.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 원정(遠征)이나 십자군 운동으로, 또는 마르코 폴로의 중국 체류와 같이 개인에 의해서도 이루어졌다. 

이런 교류는 동양과 서양뿐 아니라 서양과 이슬람, 이슬람과 동양의 문화가 서로 섞이는 계기가 되었다. 

서양이나 이슬람 문화권에서 인기가 있었던 중국의 무역품은 주로 비단·카펫·보석·향료·금속공예 등이었지만 그중 단연 

인기가 있었던 것은 도자기였다. 현재 이스탄불의 톱카피 궁전에 소장된 수많은 중국 도자기는 바로 이것을 증명한다.



	신들의 향연(부분도).
 신들의 향연(부분도).

수입된 중국도자는 종종 당시의 서양 회화에서도 나타난다.
그 예가 르네상스 시대의 베네치아 화가 조반니 벨리니의 
'신들의 향연(饗宴)'(1514년)이다.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가 '달력(Fasti)'에서 묘사한 
신들의 향연을 그린 이 그림은 오후의 따뜻한 햇볕 
속에서 한가롭게 소풍을 즐기는 올림포스의 신들을 
보여준다. 
제우스 신과 헤라 여신을 중심으로 헤르메스, 바커스 신 
등이 있으며 이미 술에 취한 사티로스, 술 주전자를 
가져오는 요정들이 자리를 함께하고 있다.

벨리니가 왜 신들을 당대 베네치아의 농부들처럼 보이게 

그렸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이들이 사용하는 술잔과 

사발을 보면 값비싼 중국의 청화백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청화백자는 베네치아로 수입된 중국의 도자일 수도 

있지만, 벨리니의 동생으로 역시 화가였던 잰틸레가 

술탄 메흐멧 2세의 초청으로 1479~80년까지 

콘스탄티노플(현재의 이스탄불)에 있었던 사실을 상기하면 

콘스탄티노플에서 온 것일 수도 있다.

유럽의 동쪽 항구로 동방무역의 중심지였던 물의 도시 베네치아는 지적이고 엄격한 이상을 강조하던 피렌체나 로마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많은 이국적인 물품들이 수입되던 이곳은 화려한 것을 좋아하고, 술 마시고 노래하며 인생을 즐기는 

감각적인 쾌락의 도시였다. 

반짝이는 피부와 무르익은 색채의 의상이 신선한 벨리니의 그림에서도 이런 그들의 인생철학이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