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4.12.08 차학봉 도쿄 특파원)
일본 국민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에게 불만이 많다.
마이니치(每日) 신문 여론조사 결과,
아베노믹스(아베 총리의 경제정책)에 대해 "경기가 좋아졌다"고 응답한 비율은 23%에 불과했다.
엔화 약세에도 수출이 늘기는커녕 수입 물가가 급등, 실질 임금이 16개월째 하락세이다.
아베 총리는 집권 2년간 100만개 일자리를 만들었다고 자랑하지만
그중 상당수는 생활이 팍팍해서 파트타임 일자리를 얻은 고령층이다.
집권 기간 동안 국가부채도 40조엔 이상 늘어나 국채 등급이 한국·중국보다 낮아졌다.
"국가 자존심이 무너졌다"는 한숨 소리도 들린다.
이런 상황만 놓고 보면 민주당이 14일 총선에서 재집권할 절호의 기회를 잡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반대이다.
집권 자민당이 3분의 2 의석에 육박하는 압승을 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반면 민주당은 '정권 교체'라는 말조차 꺼내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 후보는 198명으로 전원 당선돼도 과반 의석(238석)에 크게 부족, '집권 의욕 상실' 정당으로 전락했다.
민주당은 2009년 선거에서 압승했던 정당이다.
불과 5년 사이에 민주당이 처참하게 몰락한 이유는 뭘까.
당시 선거에서 민주당은 토목사업 예산을 절감해서 복지에 투자하겠다는 '콘크리트에서 사람으로'라는 구호로
일본 열도를 뒤흔들었다.
아동수당, 고교 무상교육, 고속도로 무료화 등 이른바 '무상(無償) 복지 패키지'는 16조엔 이상의 예산이 필요한
공약이었지만 세금을 한 푼도 더 걷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구체적인 예산과 추진 일정도 제시, 정책 선거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도 나왔다.
일본 민주당의 압승에 당시 한국 야당도 흥분했다.
선거 현장을 둘러본 한 야당 의원은 "생활 중심 공약 덕분에 민주당이 승리했다"고 평가했다.
야당은 민주당 공약을 필승 비법처럼 여겼다.
하지만 칭송받던 공약은 민주당 몰락의 방아쇠를 당겼다.
집권 기간 내내 "예산 부족으로 공약을 지키지 못해 죄송하다"는 사과를 거듭했다.
전후 최대의 재앙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와중에도 "국민과의 약속은 무조건 지켜야 한다"는 '공약 수호파'와
"나라를 거덜 내는 공약은 수정해야 한다"는 '재정 건전파'가 죽기 살기로 정쟁(政爭)을 벌였다.
결국 집단 탈당극이 벌어지면서 아베 총리에게 정권을 헌납했다.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거대 공약을 배제하는 대신 '아베노믹스'의 실패를 쟁점화하고 있지만 유권자는 냉담하다.
아베 총리는 오히려 "비판하는 정치가는 많지만 대안은 들어보지 못했다"고 힐난한다.
도쿄의 거리에서 만난 서민들은 "아베 총리에게 불만이 많지만 민주당은 정말 믿을 수 없는 무능 정당"이라고 했다.
민주당의 지리멸렬(支離滅裂)은 동북아의 전후(戰後) 질서도 뒤흔들고 있다.
아베 총리는 선거 압승을 발판으로 군대 보유를 금지한 평화헌법을 개정하고 과거 침략사 정당화를 본격화할 전망이다.
일본의 진정한 위기는 아베 총리의 독주를 견제해야 할 야당의 몰락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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