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제/서강대 교수·경제학
우리나라의 각종 가계조사는 가계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70%를 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선진국들 평균에 비해 훨씬 높은 수준이다. 미국은 30%, 일본은 40% 수준이다. 우리의 금융자산이 적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의 금융부문을 제외한 총 부채는 국민총생산 대비 27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혹은 다소 웃도는 수준이다. 정부부채가 상대적으로 낮으니 기업·가계부채 규모는 선진국들보다 더 높다. 금융자산이 빠르게 늘어나 가계자산의 구성이 균형을 이뤄나가기를 기대해선 안 된다. 금융자산과 부채는 같이 늘어난다. 지금보다 부채가 더 늘어나면 결국 금융부문의 안전성이 위협받고 안정적 성장경로를 담보하기 어렵다. 따라서 부동산의 상대가치가 더 내려가 가계자산 구성이 균형을 이뤄나가는 것이 정상적이다.
기업 상황도 마찬가지다. 지금 제조업의 영업이익률은 외환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내려와 있다. 서비스업의 경우 사상 최저 수준이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을 감당치 못하는 기업들이 지난 수년간 점점 늘어 대기업의 약 30%, 중소기업의 40%에 달하고 있다. 경기와 고용 위축을 우려해 필요한 구조조정을 미루고 저금리, 대출연장으로 이들을 연명케 한 결과다. 이런 좀비 기업들은 건전한 기업의 성장과 새로운 기업의 진입 공간을 막고 있다. 사상 최저 수준의 금리에서도 상황이 이러니 올해 중 미국이 금리를 올리기 시작하고 향후 국제금리가 서서히 올라 국내 금리 인상이 불가피하게 될 때 기업, 가계는 어떤 상황에 부딪히게 되겠는가.
대통령부터 총리 지명자, 정부, 여당까지 연일 ‘경제 살리기’를 올해 국정 최고목표로 되뇌고 있다. 그러나 무엇이 ‘경제 살리기’인가. 어떻게 해야 경제가 살아나는 것인가. 올해 예상 성장률이 3.4%이면 이는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과 비슷한 수준이다. 얼마나 성장률을 더 띄워야 경제 살리기가 되는가. 아쉽게도 여태까지 수많은 ‘경제 살리기’ 시도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중반 이후 우리나라 소득계층 하위 90%의 실질소득은 거의 정체되어 있다. 반면 상위 10%의 소득은 경제성장률보다 훨씬 빨리 늘었다. 성장의 과실이 상위 10%에 집중된 것이다. 그러니 돈을 풀어 성장률을 올려도 대다수의 국민은 이를 체감하지 못한다.
지금 한국경제는 좀 죽어야 살아날 수 있다. 지금 한국경제에 필요한 것은 ‘재균형(rebalancing)’과 분배구조의 개선이다. 집값, 가계부채가 소득 수준에 비해 더 내려가야 하고 공공기관 부채도 마찬가지다. 그래야 상대가격이 정상화되고 거기서 투자와 소비가 살아날 수 있다. 고용의 유연성을 높이고 노동시장의 2중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정부는 은행들에 벤처기업 대출 확대를 압박하기 전에 좀비 기업들 구조조정부터 유도해야 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소비와 투자, 고용이 일시적으로 위축될 수 있다. 이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완화적 통화, 재정정책이 필요하다. 그러나 단기 성장률을 띄우기 위해 팽창적 통화, 재정정책을 남발하면 경제의 취약성은 더 깊어지고 결국 위기가 와 이를 조정케 된다. 미국경제가 최근에 살아나는 것도 2008년 위기 이후 유럽경제보다 더 많은 가계부채, 부동산가격 조정이 일어나 이제 이의 반등과 더불어 소비여력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나라,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세계경제는 전반적으로 지금 회복기에 있다.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은 지난해보다 높을 전망이다. 최근의 유가 하락은 이를 더 부추길 것이다. 지금과 같이 대외환경이 좋아질 때 우리 경제에 필요한 ‘재균형’을 이루기 위한 구조개혁을 해 나가야 한다. 움츠려야 뛰어오를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지도자의 대단한 결의와 정부의 돌파력이 필요하다. 개혁과제에 있어서 나열보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만약 이번 정부에서 노동시장 유연성과 임금체계 개선만을 이뤄내도 대단한 성과가 될 것이다.
조윤제 서강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