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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중국 보너스’계속 챙기려면 한·중 FTA 잘 살려야

바람아님 2015. 2. 9. 10:44

[중앙일보 2015-2-9 일자]

 

한우덕/중국연구소 소장

 

2008년 금융위기로 야기된 세계 경제 환경 악화 속에서도 우리 경제를 이나마 버틸 수 있게 해준 상징적인 브랜드가 셋 있다. 우선 ‘갤럭시’를 꼽아야 할 터다. ‘스마트폰을 개발한 것은 애플이지만, 돈을 가장 많이 번 것은 한국 기업’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두 번째 상징 브랜드는 ‘HYUNDAI’다. 현대·기아자동차는 위기에 굴하지 않은 과감한 투자로 세계 시장 점유율을 6%대에서 9% 선까지 끌어올렸다. 온기는 관련 부품업체로 퍼졌다. 세 번째 브랜드로는 ‘요우커(遊客)’를 꼽고 싶다. 중국 관광객이 본격적으로 한국에 몰려오기 시작한 게 2008년부터였다.

 중국 시장의 역할이 컸다. 지금은 고전하고 있다지만, 삼성은 한때 20%를 넘나드는 점유율로 세계 최대 규모의 중국 스마트폰 시장을 주도했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글로벌 판매의 약 22%(지난해 약 176만 대)를 중국에서 판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613만 명의 요우커가 한국을 다녀갔고, 이들로 인한 생산유발액은 18조6000억원에 이르렀다. 일자리 창출 효과도 34만 명에 달했다. 중국에서 ‘먹거리’를 찾았다는 얘기다. 그래서 나온 말이 바로 ‘중국 보너스’다.

 이는 ‘생산 연령 인구가 늘면서 경제에 활기가 돋는 현상’을 뜻하는 경제 용어 ‘인구 보너스(Demographic Bonus)’를 응용한 말이다. ‘인구 보너스’가 인구로 인한 성장을 의미하듯, ‘중국 보너스’는 중국으로 인해 야기된 성장을 뜻한다. 1992년 수교 후 우리 경제가 중국에서 성장 동력을 찾았음을 표현한 말이다.

 그렇다고 중국에 고마워할 이유는 없다. 중국의 등장에 따른 아시아 분업 구조 변화에 우리가 잘 적응했고, 한발 앞선 기술로 중국 시장을 파고들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동안 우리 기업은 부가가치가 낮은 임가공 공장을 중국으로 옮겼고, 국내에서는 고부가 중간재를 만들어 중국에 수출했다. 수출의 약 25%가 중국으로 간다. 중국 성장을 함께 누리는 윈-윈 구조였다. 그 과정에서 ‘중국 보너스’를 챙겼다.

 문제는 그 보너스가 소실되고 있다는 점이다. 자국 기술 수준이 높아지면서 중국 기업들은 이제 어지간한 중간재는 국내(중국)에서 조달한다. ‘중국의 수출 증가→한국의 대중국 수출 증가’라는 고리는 점점 약해지고 있다. 중국은 오히려 한국의 경쟁력 있는 기업을 빨아들이는 블랙홀과 같은 존재로 다가오고 있다. 반도체와 LCD(액정표시장치)는 우리나라 대중국 수출의 약 26%를 차지한다. 그러나 삼성· LG 등 관련 업체가 중국에 현지 생산 체제를 구축하면서 수출은 줄어들 처지다. 공장이 건너가니 일자리도 넘어가고, 청년 실업은 더 심해진다. ‘중국 보너스’ 상실의 시대다.

 한·중 FTA를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중국과의 FTA는 관세율 몇 %를 내리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를 통해 ‘중국 보너스’ 상실을 막을 틀을 짜야 한다는 것이다. 핵심은 역시 ‘FTA 허브’다. 우리는 미국·EU·중국 등 세계 3대 경제체와 ‘경제 고속도로’를 깔았다. 미국·유럽 기업이 그 고속도로를 타고 중국으로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본 여건은 충분하다. 우리에게는 중국이 따라올 수 없는 시장경제 시스템이 있고, 첨단 산업을 이끌 인재가 있다. 중국 시장에 대한 이해도 역시 높다. ‘한국=첨단 제품의 중국 진출 교두보’라는 등식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한·중 양국은 FTA 가서명을 위한 막판 조율을 진행 중이다. 한두 문제만 해결되면 이번 주 안으로도 서명 가능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중 FTA 원년이 될 2015년 아침, 우리는 되돌아봐야 한다. 우리는 과연 외국 기업이 맘 놓고 투자할 수 있을 만큼 안정된 노무 환경을 구축하고 있는지, 연구개발(R&D) 환경은 잘 짜여 있는지, 적절한 기술인력 양성 시스템은 갖추고 있는지 등을 말이다. 규제가 있다면 과감히 풀어야 한다. 안정된 경영 환경이 갖춰져 있지 않다면 우리가 깔아 놓은 중국행 고속도로는 텅 빈 ‘껍데기 도로’로 전락할 수 있다.

 92년 한·중 수교가 국내 산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계기였다면, 2015년 양국 FTA 역시 또 다른 우리 산업 고도화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게 ‘중국 보너스’를 계속 챙기는 길이요, 우리가 그들과 FTA를 체결하는 진정한 이유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