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아트칼럼

[유경희의 아트살롱]가장 기쁜, 그러나 두려운 ‘수태고지’

바람아님 2015. 2. 10. 12:24

경향신문 2013.01.25

 

   

프라 안젤리코 '수태고지' 1425~30년

'수태고지(annunciation)'는 단순히 종교화가 아니다. 그것은 메타회화, 즉 그림에 관한 그림이다. 그저 진부한 성화의 주제로 무심코 지나치기 마련인 수태고지가 어찌하여 그림이 무엇인지를 설명해준다는 말인가? 수태고지는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나타나 성령으로 신의 아들을 잉태할 것이라고 전한 일이다. 정혼한 사람이 있는 처녀가 임신이라니, 게다가 당시 유대의 풍습에서 처녀의 임신은 돌로 쳐 죽일 만큼 끔찍한 스캔들이었다.

 

보통 수태고지 도상에서 가브리엘 천사는 날개를 펄럭이며 홀연히 마리아의 거처에 나타난다. 주로 백합이나 홀(지휘봉처럼 생긴 지팡이)을 들고 나오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마리아는 너무도 놀라고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손을 가슴에 대거나, 거부하는 듯한 포즈를 취하거나, 의자에서 떨어질 것 같은 모습으로 묘사된다. 그녀는 반드시 책을 들고 있는데, 구약성서의 아가서(솔로몬이 하느님께 바친 사랑의 시)를 펼쳐 보이고 있다. 신실한 믿음의 증표다.


이런 수태고지는 성서의 가장 핵심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바로 말씀(logos)이 육화되는 순간을 담은 것! 즉 보이지 않는 세계가 보이는 세계로 변하고, 비물질이 물질화된다는 뜻이다. 예술, 특히 물질이 기본이 되는 조형미술이야말로, 영혼(정신 혹은 의식이어도 좋다)이 육화되는 수태고지와 똑같은 원리를 지닌다. 그림을 한 점 걸어본 사람은 안다. 그게 그저 물질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림이 말을 걸어오고, 위안을 주고, 심지어 괴롭히기까지 한다. 물질에 영혼을 투사했으니 어찌 그림 그린 사람의 심리가 그대로 전해오지 않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그림이야말로 예수의 탄생처럼 최고의 미스터리이며, 예수의 기적 같은 최상의 감동이 아닐까?

< 유경희 | 미술평론가·유경희예술처방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