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행랑아범 노릇을 하겠다며 좁은 문간방값을 깎고 또 깎아 다른 방의 반값에 눌어붙었다. 밤늦게 외출했던 손님이 돌아올 때면 얼른 나가 대문을 열어 주고 아침엔 일찍 일어나 마당도 쓸었다. 밥때가 되면 여관밥은 비싸서 못 사 먹고 밖에 나가 선술집 국밥을 사 먹기도 하지만, 때 거르기를 밥 먹듯이 했다. 산적처럼 생겨 먹은 여관주인은 운봉이를 제 집 하인 다루듯 함부로 심부름을 시키고 툭하면 욕을 퍼부어댔다.
안주인은 달랐다. 바깥주인 몰래 누룽지도 갖다 주고 삶은 감자도 갖다 주며 인정을 베풀어 어떤 땐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했다.
장맛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밤, 안주인은 닭죽에 호리병 가득 탁배기까지 챙긴 소반을 들고 운봉이 방에 들어왔다. 바깥주인한테 들킬세라 운봉이 눈을 크게 뜨자 눈치 빠른 안주인은 “걱정하지 마. 그 화상은 노름판에 갔으니 내일 들어올지, 모레 들어올지 몰라.”
아니어도 배고프던 참에 소반을 차고앉은 운봉이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닭죽을 비우고 나자 안주인이 콸콸콸 탁배기 한잔을 따라 준다. 탁배기도 단숨에 들이켜고 나자 안주인이 “나도 한잔 따라 줘.” 운봉이 따라 준 술잔을 서슴없이 비우고 난 안주인은 한숨을 푹 쉬더니 신세타령을 늘어놓았다.
“여관에서 모은 푼돈이 좀 쌓였다 하면 이 화상은 노름판에 몽땅 처박아 버리고 화난다고 몇날 며칠 술독에 빠져 살고…. 아이고 아이고, 내 팔자야.”
어느덧 호리병 탁배기가 바닥나자 안주인은 부엌에서 또 한병을 들고 왔다. 마당을 가로지르며 장대비를 맞아 홑적삼이 몸에 짝 달라붙어 40대 초반의 흐드러진 육덕이 그대로 드러났다.
운봉의 양물이 홑바지를 뚫을 듯이 솟아오른 걸,
적삼을 벗으며 안주인이 뚫어지게 보더니 덥석 움켜쥐었다.
밖엔 장맛비, 방안엔 천둥번개 소나기. 소나기 한줄기가 뿌리고 나자
옷매무새를 고치며 안주인이
“운봉이는 이번에 알성급제하고 나중에 감사에 오를 게야.”
운봉은 웃으며 지필묵을 꺼내 스스슥 글을 써 줬다.
안주인은 그걸 들고 호호호 한바탕 웃었다.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평양 감영에 웬 노파가 찾아와 평양감사의 이모라며 감사를 만나겠다고 떼를 썼다. 평양감사가 “나는 이모가 없는데…” 하며 노파를 만났더니, 바로 그 옛날 당주동 여관의 안주인이 아닌가!
“그날 밤에 써 주었던 종이를 기름 먹여 이렇게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감사 어른.”
그때 장난으로 써 준 종이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감사가 되면 천냥으로 이 은혜를 갚으리다. 이운봉.’
감사 덕택에 평양 구경까지 잘하고 보름 만에 한양 집으로 돌아온
그녀가 천냥 보따리를 풀자 중풍에 걸려 누워 있던 남편이 눈이 휘둥그레져 사연을 물었다.
노파는 이제 반신불수가 된 영감이 겁나지 않아
그때 그날 밤 일을 자세히 얘기해 줬다.
그러자 영감이 버럭 화를 내며 하는 말 좀 보소.
“이 바보 천치 같은 여편네!
기왕 주는 거 한번 더 줬으면 이천냥을 받았을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