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02.17 김승준·성우)
라디오드라마의 전성기가 있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배우 고(故) 김자옥이 진행하던 MBC '사랑의 계절'이나 KBS '여인극장' 등
인기 라디오드라마가 많았다. 라디오드라마는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듣는 이에게 맡긴다.
한계가 아니라, 새로운 상상력의 터전이라고 해야겠다.
목소리만으로 세상에서 가장 잘생긴 사람도, 부자도, 악당도 머릿속에 그려낼 수 있는 것,
이게 다른 매체가 흉내 낼 수 없는 마력(魔力)이라 하겠다.
최근에 라디오드라마 섭외를 받았다.
최근에 라디오드라마 섭외를 받았다.
'KBS 무대'라는 순수 창작된 문예 드라마로, 1957년 처음 방송해 오늘에 이르고 있는 가히 최장수
프로다. 섭외 요청을 받고, 1992년 KBS 전속 성우 시절이 떠올랐다.
6·25 전쟁을 극화한 특집극을 녹음 중이었다. 총을 쏘는 대목이 있었다.
무식하면 용감해진다 했던가, 그저 "에잇" 정도의 단말마를 내뱉으면 충분한데 흥분한 나머지
"두두두두두" 입으로 직접 총소리를 냈다. 녹음실은 웃음바다가 됐다.
이번엔 총 맞고 쓰러져 절절한 유언을 남기는 상황.
워낙 흥분한지라 진짜로 녹음실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큐 사인'을 주려던 PD가 사람이 보이지 않자 어리둥절했다.
아, 물론 이건 내 동료의 얘기다.
지난 3일 녹음한 첫 라디오드라마는 '잔혹낙원'이라는 드라마.
욕망의 덧없음을 그린 작품이다.
4시간여 녹음을 거쳐 작품 하나가 완성됐다.
역시 드라마의 백미는 '멜로'. 연인의 숨결을 귓가에서
듣는 듯한 감정이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역시 연인의 숨결은 눈을 감아야 더 잘 느껴지는 법.
스마트 기기 덕에 모든 대중매체가 모바일화되고 있다.
라디오드라마라고 하면 왠지 고릿적 얘기 같지만,
시선을 두지 않아도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라디오드라마가, 오히려 '스마트'라는 단어와
더 잘 어울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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