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만물상] 아! 우한

바람아님 2020. 2. 11. 10:16

(조선일보 2020.02.11 안용현 논설위원) 


최근 중국판 트위터(웨이보)에 우한의 한 여성이 아파트 베란다에서 징을 치며 "코로나에 걸린 어머니를 구해달라"고

울부짖는 동영상이 올라왔다. 어머니가 확진 판정을 받았는데도 입원을 못 했다는 것이다.

응급 전화를 아무리 걸어도 "병상이 없다"며 구급차를 보내주지 않았다.

버스·지하철·택시가 전부 끊겨 어머니를 병원으로 데려갈 방법이 없었다.

자가용 등 차량 운행이 전면 금지돼 주유소도 문을 닫았다. 지금 우한의 이동 수단은 자전거와 두 발뿐이다.

80년 전 일본과 전쟁 때도 이러지 않았다고 한다.


▶우한에 고립된 한 외국인이 외출 준비 장면을 영상으로 찍었다. 마스크 두 겹에 수영용 안경을 썼다.

두꺼운 장갑도 꼈지만 엘리베이터 버튼은 무릎으로 찍어 눌렀다.

서울보다 더 큰 도시, 차량이 넘치던 시내 8차선 도로는 텅 비었다. 주인 잃은 개들이 거리를 헤맨다.

약국 유리창에는 '마스크 매진'이란 안내문이 붙어 있다.

영화에서 보던 유령 도시의 장면이 현실에서 등장했다.


[만물상] 아! 우한


▶환자가 폭증하자 우한시는 132곳의 호텔·학교 등을 임시 격리소로 지정했다.

주부 왕원쥔은 "의료 인력이 상주한다"는 당국 말을 믿고 아버지와 숙부를 한 호텔로 보냈다.

그러나 그날 밤 왕씨 아버지가 전화로 "의사도 간호사도 없다. 산소 호흡기는커녕 마스크와 소독액도 없다.

식사는 차갑게 굳은 밥 덩어리"라고 알렸다. 이튿날 숙부가 그곳에서 사망했다.

'호텔'에서 탈출한 아버지는 "난방조차 없는 곳에서 할 수 있는 건 죽음을 기다리는 것뿐"이라고 했다고 한다.


▶지난주 '음성' 판정을 받은 우한 여성은 "안 걸렸다가 아니라 병상이 없다는 의미일 것"이라고 했다.

정부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불신 속에서 우한발(發) 온갖 글이 중국 SNS에 난무하고 있다.

막아도 막아도 퍼진다. '샤오항(小杭)'이란 닉네임을 쓰는 여성은 폐렴으로 부모를 잃고 자신도 투병 중이라는 사연을

일기 형식으로 올렸다. "병원마다 입원 불가" "누구도 구해주지 않는다" "살려 달라"는 내용이다.

진위는 알 수 없으나 일부 네티즌은 '우한판 안네의 일기'라고 부른다.


▶지금 우한을 포함한 후베이성에서만 중국 전체 사망자의 96%가 나왔다.

인근 저장성은 확진자가 1100명을 넘었으나 전원 병원 수용이 가능해 어제까지 사망자는 없었다.

우한도 공산당이 진실을 은폐하지 않고 빨리 대처했으면 재앙을 막을 수 있었다.

시진핑은 어제서야 처음 방역 현장에 얼굴을 내밀었다. 우한 시민들이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기원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