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아트칼럼

[만물상] 미술관장은 輸入 못하나

바람아님 2015. 2. 24. 10:05

(출처-조선일보 2015.02.24  김태익 논설위원)

2007년 6월 프랑스 루브르미술관에서 성대한 심야 파티가 열렸다. '루브르의 친구들을 위한 만찬.' 

앙리 로이렛 관장이 루브르에 1만달러 이상 기부한 후원자들을 초청한 자리였다. 

큐레이터와 몇몇 미술사학자만 봤다던 다빈치의 드로잉 22점이 특별히 내걸렸다. 

손님들은 그리스·로마 조각들로 둘러싸인 전시장 한가운데서 양고기와 아스파라거스를 즐겼다. 

이날 로이렛 관장은 후원금 27억원을 새로 모았다.


▶영국 테이트미술관의 니컬러스 세로타 관장은 벌써 27년째 이 미술관을 이끌고 있다. 

그가 템스 강변 화력발전소를 리모델링해 개관한 테이트 모던은 10년 만에 세계 1~2위 현대 미술관으로 떠올랐다. 

한 해 관람객이 500만명이다. 초기 1만명이던 테이트 모던 후원자도 10만명으로 늘었다. 

그가 지난해 한국에 왔을 때 테이트미술관의 성공 비결을 얘기한 적이 있다. 

"우리 미술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큐레이터들이다. 나는 그들이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할 기회를 줬을 뿐이다."


	만물상 일러스트

▶불황으로 미국의 미술관들이 고전하고 있는 가운데 LA카운티미술관은 드물게 흑자 경영을 하는 곳이다. 

몇 년 전 이 미술관 신관 개관을 앞둔 때였다. 마이클 고반 관장이 관계자들에게 공사장 이곳저곳을 안내했다. 

빗물이 고여 질척한 땅이 나타나자 그는 잠깐 멈추게 하고는 주위의 널빤지를 모아 진 땅 위에 가지런히 놓았다. 

직원들이 거들려 했지만 그는 마다했다. 

허리를 굽히는 바람에 쓰고 있던 헬멧이 떨어져 진흙투성이가 됐지만 그는 툭툭 털어 다시 썼다. 

이런 배려와 겸손함은 미술 전시장을 찾는 시민들을 대할 때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비어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장 자리에 열다섯 명이 넘게 응모했다고 한다. 

미술에 대한 조예와 현장 경험, 경영 감각, 국제적 네트워크, 관람객을 왕처럼 모시려는 자세를 갖춘 인재가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그러나 미술계 안팎에선 정치권에 줄을 댄 사람, 미술 문화 발전보다 개인의 영달을 앞세우는 사람, 

능력이 모자라는 사람이 끼어 있다고 뒷말이 무성하다.


▶경복궁 옆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한 해 관람객이 100만명이다. 

미술관에 대한 국민 기대가 높은 만큼 정부는 이번에야말로 적임자를 잘 뽑아야 한다. 

한국의 미술관장이 덤으로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 가운데 하나가 이런저런 연(緣)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미술관장도 국경을 넘나드는 시대다. 

축구에서 히딩크와 슈틸리케를 영입했던 것처럼 훌륭한 미술관장을 해외에서 모셔오는 것까지도 생각해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