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분수대] 나만의 진실이 유일한 진실이라는 착각

바람아님 2015. 3. 14. 08:35

[중앙일보] 입력 2015.03.14

양성희/논설위원

 

하마터면 귀신을 볼 뻔한 적이 있다. 고등학교 때 시골 밤 길을 달리는 차 안에서 잠에 곯아떨어졌다가 일순 눈을 떴는데 기이한 풍경이 펼쳐졌다.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헤드라이트가 비추는 창 밖 길가 나무에 사람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긴 머리에 팔까지 길게 내려뜨려 흔들며 웃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무섭지 않았다. “나무에 사람들이 매달려 춤추고 있어.” 이 한마디를 하고 다시 까무룩 잠이 들었다. 일행은 “애가 피곤하니 헛것이 보이는 모양”이라고 했다.

 진짜 그때 내가 건장한 소녀 아닌 심신미약 상태였다면 분명히 “귀신이야”라며 까무러치고도 남았을 것이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때 눈앞에 펼쳐진 장면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거실 커튼을 뜯어 만든 옷을 입은 아이들이 나무에 올라 즐겁게 노는 장면과 똑 닮았다. 아마 그 무렵 그 영화를 봤을 것이다. 어린 나이였지만 이런 식으로 사람이 귀신을 보기도 하겠구나 싶었다. 마음속 어딘가에 각인된 유사한 이미지를 귀신이나 또 다른 무엇으로 얼마든지 착각, 왜곡할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주 한 벌의 원피스가 전 세계를 발칵 뒤집었다. 누군가 인터넷에 올린 줄무늬 원피스 사진에 대해 흰 바탕에 금색 줄(흰금)로 보인다는 사람과 파란 바탕에 검은 줄(파검)로 보인다는 사람의 의견이 팽팽히 맞서며 일대 논란이 벌어졌다. 한 인터넷 설문조사에 따르면 60%는 ‘흰금’으로, 40%는 ‘파검’으로 인식했다고 한다. 급기야 영국의 원피스 제작업체가 실제로는 ‘파검’이라 밝히고 나섰다. 아무리 조명 차이란 변수를 감안해도 놀라운 결과였다.

 이에 대한 설명은 뇌에서 시각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과거의 경험, 판단, 감정 등이 개입하기 때문에 같은 색을 보면서도 다르게 인식한다는 쪽으로 모아졌다. 결국 지각의 불완전성을 말해준다는 것이다. 같은 색을 보고도 서로 다른 색을 봤다고 얘기하고, 심지어 서로 자기가 본 색만이 맞는다고 우긴다. 아니 같이 ‘흰금’을 본 사람들도 정말 똑같은 ‘흰금’을 본 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오! 수정’은 똑같은 사건을 사람들이 얼마나 다르게 기억하는지를 보여준다. 같은 색깔뿐 아니라 같은 사건도 다르게 보고, 다르게 기억한다. 우리의 지각은, 인식은, 언어는 얼마나 불완전한 것인지, 그런데 우리는 그걸 얼마나 쉽게 잊고 ‘나만의 진실’을 ‘유일한 진실’로 착각하고 사는지 ‘흰금·파검 원피스 논란’이 새삼 일깨운 교훈이다.

양성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