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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천광암]임금 조정의 나비효과

바람아님 2015. 3. 26. 11:14

입력 2015-03-26 



천광암 산업부장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살았던 서울 신당동 사저가 최근 일반에 공개됐다. 뉴스를 보면서 박근혜 대통령 취임 직후 금융권에서 돌았던 ‘괴담’ 한 토막이 떠올랐다.

당시 사저 건너편에는 모 은행 대리가 살았는데, 월급을 어찌나 많이 받는지 씀씀이가 보통 사람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육영수 여사로부터 이야기를 전해들은 박정희 장군은 은행원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인상을 갖게 됐고, 나중에 대통령이 된 뒤 은행원들의 급여를 무자비하게 삭감했다. 아버지의 연(緣)이 딸에게도 이어져 이번 정권에서도 ‘은행원 잔혹사’가 재연될 수도 있다는 게 괴담의 줄거리였다.

현 시점에서 볼 때 괴담의 예측 부분은 빗나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괴담에 나오는 ‘은행원 잔혹사’ 자체는 과거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1970년대 초반까지 은행은 최고의 연봉이 보장된 ‘신의 직장’이었다. 이 시절 한국은행에 근무했던 정운찬 전 총리는 “1년에 보너스만 50번씩 받았던 것 같다”고 회고한 적이 있을 정도다. 박정희 정부는 1972년부터 은행원 고액연봉에 본격적으로 칼을 대기 시작했다. 그해 6월의 신문기사 한 토막을 보자.

‘봉급 삭감에 이어 예년 같으면 몇 번씩 쏟아져 나왔을 각종 보너스가 한 푼도 안 나오자 은행원들의 사기가 극도로 저하, 심한 이는 자기 은행에 들어오는 예금마저 “다른 은행에 가서 하라”고 할 정도로 일을 기피하고 있다.’

은행원들의 반발이 거셌지만 박정희 정부는 눈도 깜박하지 않았다. 1975년에는 모든 은행원의 월급을 무려 30% 이상 삭감하는 고강도 조치까지 내놓았다. 그러자 은행원들의 무더기 이직(移職)이 시작됐다. 당시는 수출주도형 고속성장에 가속도가 붙던 시절이다. 종합상사를 비롯한 수출기업과 중동 붐을 탄 건설업체들은 고급인력을 구하지 못해 아우성이었다.

이들의 ‘고급인력 갈증’을 해소해 준 것이 바로 이직 행렬에 뛰어든 은행원들이었다. 1976년 한 해 동안 이직한 은행원만 1500명이 넘었을 정도로 큰 규모였다. 만약 박정희 정부의 은행원 임금 삭감 정책이 없었다면 한국경제가 걸어온 길은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임금 정책은 한 나라의 경제구조나 경제발전 역사를 바꿔놓을 수 있을 정도로 영향력이 크다. 이런 점에서 최근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임금을 인상하도록 대기업들을 압박하는 것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박정희 정부의 은행원 임금 삭감 정책이 국가경제 전체로 볼 때는 나름 순기능을 했던 것과는 반대로, 최 부총리의 임금 인상 드라이브는 아무리 뜯어봐도 국가경제에 보탬 될 것이 없어 보인다.

우선 대기업들이 임금을 올리면 인재의 대기업 쏠림 현상이 가속화하고 중소기업의 구인난은 더 심해질 것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격차도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또한 정부의 강압에 못 이겨 마지못해 임금을 올린 기업들은 노동생산성이 높은 해외로 생산시설을 이전하거나, 일자리를 줄이려고 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 대기업들의 임금 수준이 너무 높아서 국제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연구결과가 많다. 정부가 팔을 비틀지 않더라도 정년 연장, 근로시간 단축, 통상임금 확대 등으로 대기업 근로자들의 실질임금은 올라갈 수밖에 없다.

과거 은행원들이 한창 좋던 시절에는 이런저런 명목을 달아 마구 수당을 만들다 보니 ‘비 오는 날에는 우중(雨中)수당, 갠 날엔 청명(淸明)수당’이라는 말까지 있었다. 정부가 지금처럼 임금 인상 드라이브를 걸다 보면 우중수당, 청명수당이 다시 등장하지 말라는 보장도 없어 보인다.

천광암 산업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