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렬/뉴욕 특파원
그 뒤를 이은 벤 버냉키 전 의장과 옐런은 시장이 호응해야 돈을 푸는 효과가 있다고 봤다. 경제가 어느 정도 살아나 돈을 거둬들일 때가 되자 Fed는 소통에 더 신경을 쓰는 눈치다. 어떤 상황이 되면 금리를 인상할지 시장에 힌트를 줘서 미리 대비하게 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시장이 엉뚱하게 움직여 혼란이 생기는 것을 최대한 막아보겠다는 의도다.
Fed가 금리 인상의 조건으로 삼는 양대 목표인 최대 고용과 2% 인플레는 Fed가 하도 강조해 경제뉴스에 관심 있는 사람이면 외울 정도가 됐다. Fed가 도대체 몇 월에 금리를 올릴지에 대한 예상은 춤을 추지만, 어떤 상황이 되면 금리 인상 버튼을 누를지는 시장에 알려져 있는 셈이다. 행동 목표를 분명하게 제시하기는 일본 중앙은행도 마찬가지다. 일본은행(BOJ)은 인플레가 2%가 될 때까지 돈을 풀겠다고 공언했고, 그렇게 하고 있다. 최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1.75%로 내렸다. 1%대 기준금리는 한국 경제가 처음 가보는 길이다.
경제가 디플레 양상을 보이고 있으니 돈이라도 풀어야 한다는 절박감엔 일리가 있다. 문제는 통화당국의 행동 방식이다. 한은은 어떤 상황까지 이런 저금리를 유지할지, 언제 어떤 방식으로 금리를 올릴지 국민들에게 설명할 책임이 있다. 한은의 금리 인하는 불붙은 가계부채에 기름을 부었다. 이 불경기에 금리가 좀 떨어졌다고 은행돈을 갖다 쓰는 이들 중 상당수는 한 푼이 아쉬운 서민들과 영세 자영업자, 중소기업이다. “은행 돈 못 쓰면 바보”라는 말이 돌고 있다는 얘기가 뉴욕까지 들려온다.
한은은 언젠가는 금리를 올릴 것이다. 1%대 금리가 마냥 지속될 수는 없다. 사상 최저 금리로 대출을 받아 집을 산 가계들 중 그때 버틸 수 있는 이는 얼마나 될까. 금리 인상기에 가장 고통을 겪을 이는 자금 여력이 없는 저소득층이다. 지금도 한계선상에 있는 이들에게 금리 인상기는 엄동설한과도 같을 것이다. 한은은 서민들의 호주머니가 두둑해져 대출상환 여력이 생길 때까지 금리를 올리지 않고 기다려줄 것인가.
금리를 내릴 이유가 있어 내린다면, 언제 어떤 상황이 오면 금리를 올리겠다는 얘기를 해줬으면 좋겠다. 그래야 뚝 떨어진 금리에 혹해서 대출 서류에 도장을 찍으려다가도 자신의 자금 사정을 다시 한번 따져보게 되지 않겠나. 목표가 분명치 않은 정책은 불안하다. 과녁이 어딘지 모르고 쏘는 화살 같기 때문이다.
이상렬 뉴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