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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ya Yefimovich Repin-심리묘사의 대가

바람아님 2013. 3. 11. 09:11

 

Ilya Yefimovich Repin(일리야 레핀)

(러시아, 1844-1930)

 

 

"나는 러시아와 그 역사에 매혹되었고,
이곳에서 나의 시야에 들어오는 대부분의 모습은

화폭에 담아 달라고 애원하는 것 같았다"

 

1874

친구에게 보낸편지


 

'톨스토이'와 더불어 러시아인들이 존경하는 19세기의 예술가인

리얼리즘 화가 '레핀'은주요 사건이나 초상화를 소재로 삼아 풍부한 감성으로

시대정신을 탁월하게 그린 당시로서는 소위 민중 화가였다.

 

우크라이나의 츄구예프에서 하급군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상트 페테르부르크

미술 아카데미를 졸업한 후 '볼가강가에서 배끄는 인부들'(1870∼1873)이라는

작품으로 유럽 화단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톨스토이 연작과 같은 인물화와 세심한 묘사로서 동 시대의 역사적 사실들을

인간중심으로 그려냈던 그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사랑은러시아 최고의 미술학교인

 '상트 페테르부르크 미술학교'가'레핀 아카데미'로 불리우는데서도 알 수 있다.

 

오늘은 그와 같은 그의 작품을 보면서 작품에 담긴 뜻을 해석 해 보기로 한다.

 

 

 

                    볼가 강의 배를 끄는 사람들


제 생각에는 일리야 예피모비치 레핀(Ilya Yefimovich Repin, 1844-1930)의 작품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작품은 전시되는 순간부터 많은 사람들의 찬사를 받았던 작품인데 지금도 그림을 보고 있으면 러시아다운 기운이 느껴집니다. 배를 끌고 있는 사람들은 남루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온몸으로 힘을 써야 하는 일을 하기에는 너무 나이 든 사람과 너무 어려 보이는 사람이 뒤섞여 있습니다. 얼굴은 햇빛에 그을렸는데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검은 얼굴은 더욱 검어 보입니다. 짙은 체념과 권태 그리고 무기력함이 모두에게서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모두였다면 아마 이 작품은 보여지는 첫 느낌 그대로 머물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 작품은 오늘날에도 시퍼렇게 날을 세우고 우리 옆에 서 있는데 그 생명력의 정체를 도스토예프스키는 그의 <작가일기>에서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앞의 배를 끄는 두 사람은 웃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적어도 그림 속의 모두는 울지는 않고 있다.” 자신들의 사회적인 지위 같은 것은 생각도 하지 않는다. 좌절하지 않는 노동의 신성함을 묘사했다는 평도 있지만 과연 그런가요? 세상에는 여러 개의 세계가 있습니다. 이 작품의 인물들도 한 세계를 이루고 있겠지요. 각자의 세계는 우열을 정할 수도 없고 정해서도 안 됩니다. 어쩌면 레핀은 이런 세계가 당신들과 같은 하늘 아래에서 모양은 이렇지만 당당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얼치기인 제가 벙거지 모자를 쓰고 담배 파이프 같은 것을 입에 문 사람을 보면서 느낀 감정이었습니다.

 

 

 

                       달밤


레핀은 졸업작품으로 금메달과 함께 3년간의 여행경비를 포함한 6년간의 장학금을 받습니다. 이탈리아를 돌아본 후 파리에 머물게 되는데 이 기간 동안 레핀은 제1회 인상주의 전시회를 봅니다. 많은 화가들이 인상주의의 영향 아래 있었지만 레핀의 작품과 집으로 보낸 편지를 보면 열렬한 인상주의 추종자는 아니었습니다. 심지가 굳었던 모양입니다. 그래도 <달밤>은 인상주의 화풍의 흔적이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서정적인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기치 않은 방문객


레핀이 미술사에서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작품에 심리적인 묘사가 대단했다는 점입니다. 때문에 레핀의 작품을 제대로 느끼려면 화면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예기치 않은 방문객>은 레핀의 심리 묘사가 화폭에 그대로 펼쳐진 작품입니다. 마치 영화의 포스터 같습니다. 1883년 알렉산더 3세가 즉위하면서 정치적인 이유로 유배를 갔던 사람들에 대해 사면령이 내려집니다. 니콜라이 체르니세프스키도 시베리아 유형지에서 집으로 돌아옵니다. 집으로 돌아온 니콜라이를 맞는 식구들의 표정과 시선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긴장감이 다 드러나 있습니다.

 

유형지에서 고생을 한 주인공은 창백하고 야윈 얼굴이지만 눈빛은 아직 살아 있습니다. 그를 유형지로 몰아넣은 이념이 아직도 그의 눈빛을 지키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가족에게 돌아가겠다는 일념이 그를 지켰다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문을 열어준 하녀의 표정은 놀람과 황당한 표정이 함께 떠 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들을 보고 늙은 어머니는 벌떡 몸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피아노 앞의 아내는 아직 들어오는 사람이 누구인지 파악이 안 된 듯한 표정입니다. 공부를 하다가 낯선 사람, 그러나 처음 보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어린 딸의 표정은 차라리 공포에 가깝습니다.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밝은 표정의 아들은 아버지가 돌아왔다는 것을 알아차린 눈빛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이 그림 한 점을 놓고 소설을 써보고 싶습니다.

 

 

                    파티


러시아 민요 중에 ‘카추샤’가 있습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때 응원가로도 불렀던 곡인데 부르는 창법에 따라 느낌이 다릅니다. 카추샤는 원래 예카테리나(영어로는 캐서린)의 애칭이죠. 가끔 러시아 민요를 틀어놓고 청소를 할 때가 있는데 듣다보면 나도 모르게 앉았다 일어나는 러시아의 전통 춤이 떠오릅니다. 그림 속의 사람들을 한 사람씩 보면서 왁자지껄한 웃음소리, 음악소리와 함께 파티에 참여해 보시면 어떨까요?

 

 

                    1901년 5월 7일 제국회의 창립 100주년을 기념하며


레핀은 역사화에도 두각을 나타냈지만 초상화와 풍경화 등에서 너무 뛰어났는데 그 분야가 좀 묻힌 듯합니다. 이 작품에서 나타난 사실적인 묘사는 컬러사진을 옮겨놓은 듯합니다.

 

 

                    공포에 질린 이반과 아들 이반


이 섬찟한 장면의 주인공은 이반 4세(이반 뇌제라고도 합니다)와 그의 아들 이반 왕자입니다. 이반 4세는 오늘날 러시아의 기틀을 세운 사람으로 처음 차르(황제)라는 호칭을 붙인 사람으로도 역사에 남이 있습니다. 잔인했지만 용맹하고 현명한 황제였는데 어렸을 때부터 권력 투쟁의 한가운데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었는지 의심이 많았습니다. 한 번은 이반 4세가 왕자의 집을 저녁에 방문했던 모양입니다. 황제를 맞는 왕자비는 겉옷을 한 벌만 입고 있었습니다. 당시 풍습은 손님을 맞이할 때는 세 벌의 옷을 입어야 했는데 이를 수상히 여긴 황제는 며느리를 폭행합니다. 왕자가 이를 말렸고 황제는 순간적으로 가지고 있던 지팡이로 왕자의 머리를 후려쳤습니다. 이 장면은 바로 머리를 후려치고 난 그 다음 장면입니다.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를 깨닫고 정신이 나간 아버지 이반 4세와 한 팔로는 아버지 어깨를 잡고 한 팔로는 바닥에 팔을 기댄 아들 이반의 비극적인 모습이 펼쳐 있습니다. 실제로 아들 이반은 며칠 후 세상을 떠나고 이반 4세가 죽고 나서 왕조는 바뀝니다. 연극의 한 장면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레핀이 얼마나 많은 장르에서 재능을 보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숲에서 쉬고 있는 톨스토이

 

                                     무소르그스키

 

 

                                  림스키-코르사코프


레핀이 남긴 초상화는 그 숫자가 대단합니다. 그는 당대의 음악가, 문학가, 과학자 등 수많은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그의 초상화를 두고 평론가들이 하는 말이 있는데 제 생각으로는 최상의 평가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는 결코 얼굴만을 그리지 않았다. 그는 자연스러운 상태의 모델, 세상과 교유하는 방법이 나타나 있는 진정한 사람을 그렸다.”

 

                       화가의 딸                                                     화가의 딸

 

 

                       화가의 딸                                                    화가의 딸

 

 

                    화가의 딸                                                      화가의 딸


레핀의 초상화 작품 중에는 비제-르브룅(Élisabeth Vigée-Lebrun, 1755-1842)처럼 자신의 딸을 그린 초상화가 있습니다. 그것도 아이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의 모습이 계속 남아 있으니까 좋은 아빠였던 모양입니다. 한 장소를 1년간 매달 찍는 것하고는 비교가 안 되는 일이죠.

 

 

                    베라 라피나 - 화가의 아내                                  베라 라피나 - 화가의 아내

 

 

                                나탈리아 노르망


아내 베라 라피나와의 사이에 대해서는 별 기록이 없습니다. 아내를 그린 초상화가 남아 있는 것을 보면 나쁜 관계는 아니었겠다 싶은데, 나중에 파리로 가서 그의 삶을 사랑한 나탈리아라는 여자를 만나 살게 되었을 때 아내와는 별거 중인 것으로 나옵니다. 레핀과 나탈리아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기차로 1시간쯤 떨어진 나탈리아의 집 페나티에서 살면서 당시 러시아의 엘리트들이 가입한 수요모임을 조직합니다. 14년 뒤 나탈리아가 죽으면서 이 집을 아카데미에 기부하지만 레핀은 그 뒤로 16년 동안 이 집을 비워주지 않고 삽니다.


말년에 소련 정부는 그를 초청하고자 여러 번 그에게 대표단을 보냈지만 그는 소련으로 돌아가지 않고 핀란드에서 세상을 떠납니다. 또 오른손 쇠약이라는 장애를 입어 왼손으로 그림을 그리려고 많은 노력을 했지만 다시는 예전과 같은 그림을 그릴 수는 없었고 그 때문에 금전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상태로 말년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허무주의에 빠진 학생


젊었을 때 한번쯤 지어봤을 표정이 저기에 있습니다. 저는 그의 눈에서 허무라기보다는 세상에 대한 분노를 보았습니다. 그림을 오래 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그의 눈빛에서 요즘 세상에 대해 제가 가지고 있는 마음의 한쪽을 들켰기 때문입니다.

 

[기타 다른 그림들]

 

                    푸시킨

 

 

                        작곡가 미하일 글린카

 

 

                       작곡가-피아니스트 안톤 루빈스타인

 

 

                   사드코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오페라 <사드코>(Sadko)의 한 장면을 그림으로 담은 것 같네요. 흔히 보는 레핀의 그림들과는 사뭇 다르네요. 환상의 세계가 따로 없군요.

 

                    방랑하는 순례자들


남루한 옷차림의 두 여인의 모습이 한 장의 오래된 빛 바랜 사진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묘사와 색채가 놀랍습니다. ‘가난한 민중’ 연작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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