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03.31 오태진 수석논설위원)
남녘 봄은 섬진강 거슬러 온다. 제주도를 밝힌 꽃불이 하동과 광양 사이 하구(河口)로 날아든다.
3월 중순 섬진강 서안(西岸)에 매화로 내려앉는다.
광양 쫓비산 언덕에 소금 뿌리듯 백매(白梅) 만발하면 구례 지리산 자락에 노란 산수유꽃 흐드러진다.
4월 초 섬진강 동쪽 하동 화개장터 길과 19번 국도는 벚꽃 터널이 된다.
그 길에 꽃비 내릴 즈음 구례 화엄사 흑매(黑梅)가 피같이 붉은 꽃 매단다.
섬진강은 열꽃 돋듯 피고 지는 꽃으로 한 달 내내 봄을 앓는다.
▶봄꽃은 하루아침에 우르르 피지 않는다. 순번 정한 것처럼 차례대로 온다.
나무는 번식하기 좋은 곳을 찾아 옮겨 다닐 수 없다. 대신 꽃 피는 날짜를 달리해 경쟁에서 살아남으려 한다.
그러나 이상 기후가 이상하지 않은 세상, 꽃은 헷갈린다.
'개화 시계'가 고장 나기 일쑤다. 올봄도 순서가 뒤죽박죽이다.
광양 매화축제는 14~22일 열렸다. 초반엔 거의 피지 않아 꽃 없는 축제를 치렀다.
21일 시작한 구례 산수유축제도 꽃이 늦었다.
▶순천 선암사는 꽃눈도 못 틔운 매화축제를 21일 열었다.
축제 하는 사람들이야 죽을 맛이겠지만 덕분에 지난 주말 드문 꽃 나들이를 했다.
광양 매화, 구례 산수유, 화엄사 흑매, 선암사 매화까지 남도 봄꽃을 하루에 다 누렸다.
서둘러 나서 구례 상위마을에 아침 여덟 시 도착했다.
그제야 산그늘이 걷히면서 계곡 산수유꽃이 눈부시게 빛난다. 병아리 털처럼 보송보송하다.
서늘한 공기 마시며 한적하게 걸었다.
▶남쪽 화엄사로 갔다. 훤칠한 홍매가 각황전 옆 허공에 빨간 물감을 끼얹었다.
삼백 살 노매(老梅)가 피우는 꽃이 붉다 못해 검붉어서 흑매다.
80%쯤 피어 조금 성기지만 알큰한 향기를 뿌린다. 늙은 우리 매화, 고매(古梅)는 선암사에서 먼저 봄을 맞는다.
육백 살 선암매가 무우전 돌담길에 만개하면 그 기운이 열흘 백 리를 날아 흑매를 깨운다.
올해는 어찌 된 일인지 흑매가 앞서 피었다.
▶섬진강 따라 광양 청매실농원으로 갔다. 축제 끝나고 일주일 지나도록 꽃 좋고 사람 많다.
농원 북쪽 매화는 한창이다.
서쪽 순천으로 갔더니 선암매는 40%도 안 피었다. 대웅전 뒤 화사한 홍매가 그나마 발품 값을 해준다.
늦장 부리던 선암매도 오늘쯤 활짝 핀다고 한다. 따사로운 하루 봄볕이 어딘가.
산수유와 흑매도 며칠 더 볼만할 것 같다.
섬진강 벚꽃만은 제때 꽃망울을 터뜨렸다. 주말 축제에 맞춰 꽃사태, 꽃멀미 나겠다.
자연의 조화(造化)가 변덕스럽긴 해도 봄은 이제 절정으로 치닫는다.
<지리산 화엄사 흑매>
(삼성, NX10, 18-55mm 표준줌, 삼각대 2015.04.01 오전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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