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自然과 動.植物

매화나무일까, 매실나무일까

바람아님 2015. 4. 5. 10:39
매화 찾아 떠난 선암사 탐매 기행

오마이뉴스 | 2015.03.31 



▲ 가장 일찍 피는 홍매동지섣달에 핀다해서 납월매로 불린다.

ⓒ 윤병렬

매화나무일까? 매실나무일까? 정답은 간단하다. 꽃을 강조하면 매화나무, 열매를 강조하면 매실나무가 된다.

매화는 봄이 왔음을 가장 먼저 알리는 꽃 중 하나다. 매화가 피었는데 그 꽃 위로 눈이 내리면 설중매, 달 밝은 밤에 보면 월매, 옥같이 곱다해서 옥매, 향기를 강조하면 매향이 된다. 월매는 남원 사는 성춘향의 어머니 이름이기도 하다. 옛날 기생들 이름에 매화가 많이 들어간 이유는 주 고객층인 양반가의 선비들과 시인 묵객들 사랑을 많이 받기 위해서였던 모양이다.

▲ 홍매와 백매붉은 꽃은 홍매, 흰꽃은 백매로 불린다.

ⓒ 윤병렬

아주 오랜 옛날부터 선비들의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며 우리 조상들 사랑을 듬뿍 받은 나무가 바로 매화나무다. 끼니 때우기도 힘들던 시절 매화 감상을 떠나는 이들은 대부분 양반가의 선비들이나 풍류를 즐길 수 있었던 시인 묵객들이었다. 이른 봄에 처음 피어나는 매화를 찾아 나서는 것을 심매 또는 탐매라고 한다.

▲ 운수암 가는 길수십 그루의 매화가 피어있다.

ⓒ 윤병렬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매화나무가 있는 절 순천 선암사로 탐매 기행을 나섰다. 몇 년 전까지는 경남 산청 단속사지에 있는 정당매가 최고령이었는데 최근에 고사하고 말았다. 순천시 승주읍 조계산 동쪽에 있는 선암사에는 원통전, 각황전을 따라 운수암 오르는 담길에 50여 그루의 매화나무가 모여있다.

▲ 선암매수령 600년이 넘은 천연기념물 백매

ⓒ 윤병렬

▲ 선암사 홍매천연기념물 제 488호 선암사 홍매

ⓒ 윤병렬

원통전 담장 뒤편의 백매화와 각황전 담길의 홍매화는 천연기념물 제488호로 지정되었다. 문헌에 전하는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사찰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지금으로 부터 600여 년 전에 천불전 앞 와송과 함께 심었다고 전해진다. 매화꽃이 필 때면 매화를 보기위해 선암사를 찾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선암사는 매화가 유명하다.

▲ 와송 뒤편의 홍매선암사 와송 뒤편의 홍매

ⓒ 윤병렬

매화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들도 꽤 많다. 단원 김홍도는 끼니를 걸러야 할 만큼 집안 살림이 가난했다고 한다. 그런데 하루는 어떤 사람이 매화나무를 팔려고 찾아왔다. 살 돈은 없었지만 김홍도는 그 매화나무가 썩 마음에 들었다.

이때 단원의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이 단원에게 마음에 드는 그림을 청하고 사례로 3000냥을 주었다. 김홍도는 3000냥 중 2000냥은 매화나무를 사고, 800냥은 여러 말이나 되는 술을 사다가 친구들 불러 매화 감상하며 거나하게 술을 마셨다고 한다. 남은 돈 200냥으로 쌀이랑 나무 사서 집에 들여놓았는데... 세상에 하루 지낼 양식 밖에 되지 않았다. 요즘 같으면 곧바로 이혼 사유다.

▲ 매화나무왼편이 청매, 가운데가 홍매, 오른편이 백매다

ⓒ 윤병렬

또 퇴계 이황은 '매화는 추워도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말을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한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하더라도 원칙을 지키며 의지와 소신을 굽히지 않겠다는 뜻이 담겨있는 말이다.

단원 김홍도를 능가할 정도로 매화를 사랑한 사람이 퇴계 이황이다. 퇴계는 아침마다 마당에 있는 매화와 대화를 나누고, 매화를 형이라 부르고, 임종 직전에는 "저 매화 화분에 물을 주거라"는 말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도산서원 광명실 앞 매화는 퇴계가 풍기군수를 할 당시 두향이라는 관기로부터 선물 받은 매화였다.

▲ 선암사 백매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매화나무

ⓒ 윤병렬

그리 멀리 가지 않더라도 조금만 눈여겨 살펴보면 우리 사는 주변에서도 더러 매화꽃을 볼 수 있다. 아파트 화단, 도심 공원, 대학 캠퍼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도 볼 수 있고 동네 뒷산 기슭 밭에서도 흔하게 만날 수 있다.

봄날 가기 전에, 매화꽃 지기 전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코를 벌렁거려 보면 의외의 장소에서 매화꽃, 매화 향기 만날 수 있다. 고고한 달빛 아래 은은하게 퍼지는 매화 향기 맡으며 막걸리 한잔 나누면 신선이 될 수도 있을 터.

"방은 운치가 있으면 그만이지 어찌 꼭 넓어야 하며 꽃은 향기가 있으면 그만이지 많을 필요가 있겠는가."

<서재에 살다>란 책에서 본 문구다. 600년 넘게 꽃과 향기 간직하고 있는 선암사 매화와 딱 어울리는 구절이다. 이번 주와 다음주까지가 선암사 매화의 절정을 볼 수 있는 시기다. 운이 좋으면 바람에 흩날리는 매화 비도 만날 수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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