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0여 년, 채 15년까지는 못되었을까?
하얼빈서 4~500리를 더 들어간다는 무슨 현縣이라는 데서 청마 유치환이 농장 경영을 하다가 자금 문제인가
무슨 볼 일이 생겨 서울에 왔던 길에 나를 만났다. 2~3일 후에 결과가 시원치 못한 채 청마는 도로 북만北滿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눈이 펑펑 내리는 날이었다. 역두에는 유치환 내외분, 그리고 몇몇 친구가 전송을 나왔다.
영하 40 몇 도의 북만으로 돌아간다는 청마가 외투 한 벌 없는 세비로 바람이다. 당자야 태연자약일지 모르나
곁에서 보는 내 심정이 편치 못했다. 더구나 전송 나온 이 중에는 기름이 흐르는 낙타 오바를 입은 이가 있었다.
내 외투를 벗어주면 그만이다. 내 잠재의식은 몇 번이고 내 외투를 내가 벗기는 기분이다. 그런데 정작 미안한
일은 나도 외투란 것을 입지 않고 있었다.
기차 떠날 시간이 가까웠다.
내 전신을 둘러보아야 청마에게 줄 아무것도 내게 없고, 포켓에 꽂힌 만년필 한 자루가 손에 만져질 뿐이다.
내 스승에게서 물려받은 <콩쿠링> - 요즈음 <파아카>나 <오터맨> 따위는 명함도 못 들여 놓을 만큼 초고급
만년필이다. 당시 6월圓하는 이 만년필은 일본에서도 열 자루가 없다고 했다.
"만년필 가졌나?"
불쑥 묻는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청마는 제 주머니에서 흰 촉이 달린 싸구려 만년필을 끄집어내어 나를
준다.
그것을 받아서 내 주머니에 꽂고 <콩쿠링>을 청마 손에 쥐여 주었다.
만년필은 외투도 방한구防寒具도 아니련만, 그때 내 심정으로는 내가 입은 외투 한 벌을 청마에게 입혀 보낸다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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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시대를 산 수필가 김소운 선생의 '외투'라는 제목의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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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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