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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평중 칼럼] 歷史는 반복되는가

바람아님 2015. 5. 22. 11:28

(출처-조선일보 2015.05.22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경제·민주 革命 이룬 대한민국 '自閉'
100년 전 조선과 다르고 日 군국주의化 우려도 과장돼
對日, 관계 회복 후 당당하고 對中, 가깝되 기울지 않는 게 비극적 역사 反復 피하는 길


	윤평중 한신대 교수 사진

한반도와 동아시아 질서가 요동쳐도 현대 한국의 심층 구조가 구한말(舊韓末)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의외로 널리 퍼져 있다. 

대한제국의 패망을 부른 100년 전 한반도 역사 구조의 본질이 바뀌지 않은 채 반복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한반도 역사 반복론'이라고 부를 수 있을 우국충정(憂國衷情)의 이 가설은 구한말처럼 시대착오적인 

당파 싸움으로 분열을 일삼는 오늘의 정치권을 강력히 꾸짖는다. 

백년대계는커녕 무능과 단견(短見)으로 나라를 위기에 빠트린 현대의 지도층을 질타한다.


한반도 역사 반복론은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구조를 불변의 상수(常數)로 꼽는다. 

우리네 덩치가 구한말보다 훨씬 커졌지만 압도적인 미·일·중·러 4강(强)의 국력 앞에서 큰 의미를 갖기 

어렵다는 논리다. 

국력의 상대성이 국가 간 관계의 본질이므로 동아시아의 힘 관계에서 한국의 역량은 독립변수가 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미국과 손잡은 일본의 '보통 국가화', 즉 전쟁을 할 수 있는 군사 강국 일본의 재등장은 역사 반복론을 부추긴다. 

'북한의 미사일 기지를 선제 공격할 수 있다'는 일본 방위상의 발언은 타오르는 역사 반복론에 기름을 끼얹었다. 

임진왜란과 한일합방에 이은 일본의 한반도 침략 가능성이라는 우리의 악몽(惡夢)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반도 역사 반복론은 객관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감성적 주장일 뿐 아니라 한국의 국익을 심각하게 저해한다. 

속절없이 무너져간 100년 전 조선과 

떠오르는 21세기 한국이 전혀 다른 나라라는 사실을 간과하는 데서 역사 반복론의 오류가 시작된다. 

그러나 무력하게 국권(國權)을 빼앗긴 조선왕조와는 완전히 다르게 세계 10대 경제 강국에 근접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조선조의 자폐적(自閉的) 경제 질서와는 정반대로 전 지구적 자유시장 질서와 연계해 발전한 게 21세기 한국 경제이다.

나아가 역사 반복론은 오늘의 한국인이 자유와 민권(民權)을 알지 못했던 조선왕조와는 

전면적으로 다른 열린 사회의 시민이며, 경제 혁명과 민주 혁명을 이룬 주체라는 사실을 무시한다. 

지정학적 구조 분석에 있어서도 한반도 역사 반복론은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다. 

현대 한국이 이룬 성취, 즉 약소국에서 중강국(中强國)으로의 지위 상승은 국제정치적으로 결코 과소평가될 것이 아니다. 

국제법과 UN 같은 국제기구가 작동하는 공간인 21세기 세계 정치 질서는 

약육강식을 정당화했던 19세기의 혼란스러운 정치 질서와 질적으로 차별화된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한반도 역사 반복론은 민족감정에 선정적으로 편승한 낭설(浪說)에 불과하다. 

가장 치명적인 것은 역사 반복론이 우리의 현실 인식과 미래 예측을 왜곡시킨다는 점이다. 

그 폐해(弊害)는 일본과 중국에 대한 뒤집힌 인식에서 집중적으로 드러난다. 

아베 정권의 역사 수정주의는 보편적 시민 윤리의 잣대로 비판해야 마땅하지만 

현대 일본이 군국주의 국가로 퇴행해갈지 모른다는 우려는 크게 부풀려진 것이다. 

그것은 일본이 세계 제국(帝國) 미국에 정면으로 도전하지 않는 한 실현 불가능한 시나리오다.

일본에 대한 우리의 민족주의적 과민 반응은 중국에 대한 둔감한 반응과 한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중원(中原) 대륙으로부터의 한반도 침공이 일본 열도에서의 침략보다 훨씬 많았던 사실(史實)을 감안하면 

참으로 기이한 현상이다. 

하지만 제국을 향한 일본의 꿈은 백일몽(白日夢)에 그친 데 비해 중국은 그 반만년 역사에서 거의 언제나 제국이었고, 

지금도 세계 제국이 되기 위해 진군 중이다. 

이때 제국(帝國)은 큰 국가 이상의 존재로서, 자신을 '질서의 창조자이자 보증인'으로 여긴다. 

로마제국과 대영제국, 중·근동의 오스만제국, 20세기의 소련 제국, 오늘의 미국 제국 등이 대표적 사례다. 

조선시대 우리 선조들이 소중화(小中華)를 자처하며 중국과 우리를 동일시했던 허위 의식은 

21세기 한국인들이 제국 중국보다 제국 미국을 비판하는 게 더 진보적이라고 믿는 거대한 착각으로 재생산된다.

자폐적 대외 인식과 명분론에서 비롯된 대일 관계 악화는 

우리의 국익을 심각하게 해치므로 대일 관계를 시급히 정상화하면서 아베 정권에 당당히 맞서는 게 현명하다. 

중국과도 계속 가깝게 지내야 하지만 제국으로서의 중국에 너무 기우는 건 한반도의 독립과 시민적 자유에 해롭다. 

중국에 대한 우리의 발언권은 미국과 일본을 '이용'할 때 크게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웃 제국의 흡인력을 제어하는 강단(剛斷)과 지혜로써만 비극적 역사의 반복을 막는 게 가능하다. 

결국 '역사는 반복되는가'는 열려 있는 질문이다. 

미완(未完)의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자는 오직 우리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