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歷史·文化遺産

[설왕설래] 절대권력

바람아님 2015. 5. 17. 11:43

세계일보 2015-5-15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영국 역사가이자 법철학자인 존 에머릭 액튼의 말이다. 1800년대 후반 교황의 절대주의를 비판하며 나온 소리다. 이 말은 비단 교황권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모든 종류의 권력에 통용된다. 권력의 속성은 모두 비슷하니 그렇다.

부패하기만 할까. 절대권력은 절대 불안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패한 권력이 오래 버틴 적은 없다. 시도 때도 없이 터진 농민의 난. 부패한 권력자가 불안해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왕도(王道) 사상은 이로부터 비롯된다. "정령(政令)으로 이끌고 형벌로 다스리면 법망을 빠져나가도 부끄러움을 모르며, 덕으로 이끌고 예로써 다스리면 부끄러움을 알고 잘못을 바로잡는다'(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 '논어' 위정편에 나오는 치국(治國)의 요체다. 쓸데없는 법이나 만들어 가혹한 형벌로만 백성을 복종시키고자 하면 망한다는 뜻이다. 그러지 않으려면? 먼저 수신(修身)을 하고 제가(齊家)를 하라고 했다. 이 말은 '대학' 첫머리에 나온다.

 

궁예. 우리 역사에서 가장 엉뚱한 왕도를 걸었던 인물이다. 절대권력을 너무 거머쥐었기 때문일까, 스님 출신인지라 사서를 읽지 않아서일까. 스스로 미륵불이라며 관심법(觀心法)이라는 이상한 통치술을 썼다. 정말 남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지녔다고 믿은 걸까. 의심 나면 자신의 생각대로 판단하고 처벌했다. 재판도 없었다. 많은 신하가 그렇게 숨져 갔다. 부인 강씨는 남편의 신통력을 믿었을까. 궁예는 강씨에게 "네가 다른 사람과 간통하니 어찌된 일이냐"고 묻더니 불에 달군 쇠공이로 잔인하게 죽였다. '고려사절요'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부인은 어처구니없어 했다." 궁예를 돕던 사람들은 왕건에게 달려갔다.


관심법이 평양에 등장한 건가. 툭하면 처형 소식이 날아든다.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강건종합군관학교에서 고사총으로 처형됐다고 한다. 장성택도 그렇게 죽어갔다. 이번에는 재판도 없었다. 마원춘 국방위원회 설계국장, 변인선 인민군 총참모부 작전국장, 한광상 노동당 재정경리부장도 숙청됐다. 면면이 김정은체제를 떠받친 인물이다. 살아남은 당·군·정 간부는 무슨 생각을 할까. 이런 말이 나돈다고 한다. "가까이 다가가는 순서대로 죽는다." 관심법을 쓴 궁예 주변에서나 나올 법한 소리다.

"절대권력은 절대 망한다." 이런 말을 한 사람은 없나.

강호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