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입력 2015.05.23
양성희/논설위원
물론 그의 아름다운 역사는 여기까지다. 입대 3개월 전 일본 공연을 빌미로 출국해 미국에서 시민권을 취득했고, 이후 법무부의 영구 입국 금지자가 됐다. 2002년 인천공항에서 입국을 거부당하는 장면이 대중이 기억하는 마지막이다.
그런 그가 13년 만에 대중 앞에 무릎 꿇고 눈물을 흘렸다. 지난 19일 인터넷방송인 아프리카TV를 통해 “지금이라도 두 번 생각 안 하고 군대에 가고 싶다. 선처를 바란다”고 했다. 대중의 반응은 여전히 냉랭하다. 입국이 허용돼도 병역의무가 면제되는 나이라 발언 시기에 대한 진정성 논란이 일었다. 또 국적 회복이나 입대를 위한 실질적 노력 없이 ‘변명 생중계’로 일관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22일 중앙일보 온라인 여론조사도 ‘입국 불가’가 82%로 압도적이었다.
이번 유승준 사죄 퍼포먼스와 대중의 반응은 그에 대한 ‘추방자’라는 낙인과 심판이 요지부동임을 확인시켰다. 병역기피에 거짓말, 그리고 조국을 버린 자. 이 세 가지가 그의 ‘죄목’이다. 병역을 기피하며 말을 바꾸고 조국을 등지기까지 했으니 ‘가중처벌’감이다. 더구나 우리 사회에서 병역기피란 단순히 국방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을 넘어 남들은 다 겪는 어려움을 혼자만 면하는 특권의 문제, 사회정의의 이슈다.
일벌백계를 원하는 대중의 심리는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당장의 작은 이익에 눈멀어 자기 커리어를 완전히 망친 ‘동정 없는 추방자’의 주인공이 다름 아닌 바로 대중의 심리에 가장 예민한 연예인이라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실제 ‘유승준 시범 케이스’에도 불구하고 국적 포기로 병역을 기피하는 인원은 매년 3000명에 이른다. 2013년에는 당시 청와대 수석비서관을 비롯해 15명의 현 정부 고위공무원들의 자제 중 무려 16명이 국적 포기로 병역을 면제받기도 했다. 과연 이들에게도 똑같이 엄중한 잣대가 적용되고 있는가. 병역기피로 물의를 빚은 연예인들이 집단 성토를 받는 한편에서 정작 더 큰 문제는 대충 눈감고 넘어가고 있는 건 아닌가 해서 말이다.
양성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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